[시론] 창조경제, 공직문화부터 바꿔라
요새 아무도 모르는 것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와 둘째는 북한 김정은과 안철수의 마음이고 나머지 하나는 창조경제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핵심 비전인 창조경제에 대해 ‘창의성을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가 융복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도 창조경제의 의미가 애매모호하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은 큰 문제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서비스산업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선 기존 틀에서 벗어나 창조형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며 “창조형 서비스산업이 되려면 상상력과 창의성이 자유롭게 발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는 ‘창의성’일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창의성’을 ‘새롭고 남다른 것을 생각해 내는 성질’ 또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실제로 존재하도록 만드는 능력’이라 정의돼 있어, 창조경제를 실현하려면 아무 기반 없이 새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소위 ‘맨땅에 헤딩’하는 무모함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고 그러지 못한 우리를 주눅들게 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추사 김정희는 단군 이래 창의성이 으뜸인 예술가로 꼽힐 만큼 독특하고 차별성이 뛰어난 추사체의 창시자이지만, 사실 추사체는 추사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탁월한 금석학자였던 추사가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 정도로 고금의 유명 서체들을 쓰고 또 쓰면서 깨닫고 도달하게 된 결과물이 추사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입고출신(入古出新)’이란 말이 나온다. 창의성을 논할 때 ‘입고’를 빼고 ‘출신’만 강조하면 너무 부담스럽고 자칫 허황될 수 있어 오히려 의욕이 떨어지고 아예 포기해 버리기도 쉽다.

의료서비스도 창조형 서비스산업으로 분류돼 여러 가지 지원책이 나올 것이란 얘기가 들리는데, 생명을 다루는 의료에 실증되지 않은 획기적인 방법이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검증된 사례를 공부하고 연구해 조금이라도 결과가 나아지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이고, 의료서비스의 성과를 높일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을 새롭게 개선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창조경제의 정의 중에서 또 하나 중요한 단어가 ‘융복합’이다. 얼마 전 시중은행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해외환자 유치가 화제에 올랐다. “외국 환자들이 한국 의료서비스를 선호해 우리나라에서 치료받길 원하지만, 이를 연결해 줄 신뢰성이 높은 알선기관이 없어 무자격 에이전시가 판치며 그들에게 병원이 사기당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어려움을 말하자, “은행 해외지점망을 활용해 해외환자와 국내 의료기관을 연결해 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와 다들 실행에 옮겨보자고 의견을 모았던 적이 있다. 사실 ‘내 밥그릇 챙기기’가 유난한 한국 사회에서 ‘창의성’보다 ‘융복합’이 어려울 수 있다. 의사들도 자신의 전공과목만 강조하다 보니 환자 불만이 가중돼, 고객중심 환자 맞춤형으로 만든 것이 바로 ‘원스톱 서비스’이고 ‘센터 시스템’이다. 환자가 진료와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납하고 대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군데에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 해결방식이 그 기반이 되고 있다.

의료서비스가 창조형 서비스산업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에 이르기까지 함께 지원해야 가능하며, 의료관광을 넘어서는 ‘의료한류’를 일으키려면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부, 법무부의 복합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의 창조적 융복합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각 부처 장관과 공직자들의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소통과 화합이 우선돼야 한다. 공직문화가 ‘고객맞춤형 원스톱 서비스’로 거듭날 때 대통령의 꿈인 창조경제가 제대로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다.

백수경 < 인제대·백병원 부이사장, 객원논설위원 skpaik@inje.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