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6·25전쟁의 기적과 좌익선동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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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폐허 위에 꽃피운 자유·민주
정전 60년 지금 역사왜곡 판 쳐
국가정신 세워야 창조경제 가능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정전 60년 지금 역사왜곡 판 쳐
국가정신 세워야 창조경제 가능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60년 전인 1953년 6월18일은 고(故)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 광주 등 전국 7개 포로수용소에서 2만7389명의 반공포로를 석방한 날이다. 이 사건 후 미국은 즉각 특사를 보내 한국이 원하던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합의하고 정전(停戰) 방해를 하지 않겠다는 동의를 얻어냈다. 이로써 2년여를 끌던 휴전회담은 급물살을 타 7월27일 체결을 보게 됐다.
주지하다시피 6·25 휴전회담은 한국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이뤄졌다. 1952년 6·25전쟁 중지를 공약으로 당선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휴전협정을 서두르고 있었으며, 휴전 이후가 불안한 이 대통령은 전 국민을 동원해 끊임없이 휴전 반대와 북진 통일을 외쳤다. 이런 가운데 6월8일 양측 대표들이 회담의 마지막 관문인 포로교환 협정에 합의하자 이 대통령이 ‘제네바협정과 인권정신’의 이름으로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해 재를 뿌린 것이다. 세계는 경악했으며 미국은 이 대통령의 북진 위협이 ‘빈말’이 아님을 깨닫고 휴전 후 한국의 안보를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한·미 군사동맹을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60여년을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는 기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1948년 미 군정이 조사한 우리 국민의 체제 선호도를 보면 86%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선호할 정도로 좌익에 경도됐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은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결단력을 발휘한 정치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남한 단독정부 수립의 결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미상불 김일성의 국민이 되고 말지 않았을까?
북한이 6·25전쟁을 일으킬 때 한국에는 탱크 한 대, 전투기 한 대 없었다.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되고 일도직하로 낙동강까지 밀렸다. 당시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전쟁 개입 결단이 없었다면 한국은 분명 공산화됐을 것이다. 6·25전쟁은 건국 후 2년이 안된 대한민국의 국토, 국민과 산업을 철저히 파괴했다. 수백만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고 걸인, 고아, 과부, 상이군인이 무수히 생겨났다. 그러나 이 비참한 전쟁은 남한 국민에게 악몽 같은 공산주의를 경험하고 이승만 반공자유주의 정치 아래 뭉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이는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빈궁하고 무지했던 시절 한국 사회를 공산주의자들의 도발로부터 지켜내는 힘이 됐을 것이다.
휴전 후 한·미 동맹이 제공한 안보기반 아래 우리 국민은 자유와 개방 체제를 가동시켜 오늘날 북한보다 수십 배가 넘는 풍요와 자유를 누리게 됐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6·25전쟁마저 남한이 먼저 침략했다거나 북한의 침입을 유도한 것이라는 선동이 만연하도록 좌경화됐거나 무감각해졌다. 만약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1948년 한국을 떠난 미국은 한반도에 다시 돌아올 일이 없었고, 국민은 공산주의 환상을 벗어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됐다면 한국민은 지금 북한 꼴이 아닐까. 언제 생각해봐도 모골이 송연한 일이다.
휴전 60년이 지난 오늘, 역사는 돌아 우리는 건국 전후 혼돈의 시대로 다시 회귀한 느낌이다. 정권을 누가 잡았든 지금 역사와 이념은 좌파의 시대라 할 만하다. 최근 교학사 역사교과서나 국정원 수사사건에서 보듯 언론, 포털, 민주당, 전교조 등은 어떤 우파적인 견해나 출판물도 햇빛을 보지 못하도록 일치 단결해 철저히 공격한다. 그 기세에 여당 정부는 기죽어 존재가 없다. 대한민국을 주장하는 세력에 가혹하고 반대 세력엔 비굴한 법원, 검찰의 태도는 도를 넘고 있다. 이처럼 국가정신이 빠진 사회가 어떤 창조적인 경제나 문화를 건설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언론의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 결과에서 고교생의 69%가 6·25전쟁을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강조한 사실은 큰 의미를 가진다. 박 대통령은 “교육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고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문제”라며 이를 바로잡을 대책을 마련하도록 당부도 했다. 박 대통령이 60여년 대한민국의 역사를 창조한 선각적 지도자들의 발자취를 좇을 수 있을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
주지하다시피 6·25 휴전회담은 한국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이뤄졌다. 1952년 6·25전쟁 중지를 공약으로 당선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휴전협정을 서두르고 있었으며, 휴전 이후가 불안한 이 대통령은 전 국민을 동원해 끊임없이 휴전 반대와 북진 통일을 외쳤다. 이런 가운데 6월8일 양측 대표들이 회담의 마지막 관문인 포로교환 협정에 합의하자 이 대통령이 ‘제네바협정과 인권정신’의 이름으로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해 재를 뿌린 것이다. 세계는 경악했으며 미국은 이 대통령의 북진 위협이 ‘빈말’이 아님을 깨닫고 휴전 후 한국의 안보를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한·미 군사동맹을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60여년을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는 기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1948년 미 군정이 조사한 우리 국민의 체제 선호도를 보면 86%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선호할 정도로 좌익에 경도됐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은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결단력을 발휘한 정치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남한 단독정부 수립의 결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미상불 김일성의 국민이 되고 말지 않았을까?
북한이 6·25전쟁을 일으킬 때 한국에는 탱크 한 대, 전투기 한 대 없었다.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되고 일도직하로 낙동강까지 밀렸다. 당시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전쟁 개입 결단이 없었다면 한국은 분명 공산화됐을 것이다. 6·25전쟁은 건국 후 2년이 안된 대한민국의 국토, 국민과 산업을 철저히 파괴했다. 수백만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고 걸인, 고아, 과부, 상이군인이 무수히 생겨났다. 그러나 이 비참한 전쟁은 남한 국민에게 악몽 같은 공산주의를 경험하고 이승만 반공자유주의 정치 아래 뭉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이는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빈궁하고 무지했던 시절 한국 사회를 공산주의자들의 도발로부터 지켜내는 힘이 됐을 것이다.
휴전 후 한·미 동맹이 제공한 안보기반 아래 우리 국민은 자유와 개방 체제를 가동시켜 오늘날 북한보다 수십 배가 넘는 풍요와 자유를 누리게 됐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6·25전쟁마저 남한이 먼저 침략했다거나 북한의 침입을 유도한 것이라는 선동이 만연하도록 좌경화됐거나 무감각해졌다. 만약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1948년 한국을 떠난 미국은 한반도에 다시 돌아올 일이 없었고, 국민은 공산주의 환상을 벗어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됐다면 한국민은 지금 북한 꼴이 아닐까. 언제 생각해봐도 모골이 송연한 일이다.
휴전 60년이 지난 오늘, 역사는 돌아 우리는 건국 전후 혼돈의 시대로 다시 회귀한 느낌이다. 정권을 누가 잡았든 지금 역사와 이념은 좌파의 시대라 할 만하다. 최근 교학사 역사교과서나 국정원 수사사건에서 보듯 언론, 포털, 민주당, 전교조 등은 어떤 우파적인 견해나 출판물도 햇빛을 보지 못하도록 일치 단결해 철저히 공격한다. 그 기세에 여당 정부는 기죽어 존재가 없다. 대한민국을 주장하는 세력에 가혹하고 반대 세력엔 비굴한 법원, 검찰의 태도는 도를 넘고 있다. 이처럼 국가정신이 빠진 사회가 어떤 창조적인 경제나 문화를 건설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언론의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 결과에서 고교생의 69%가 6·25전쟁을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강조한 사실은 큰 의미를 가진다. 박 대통령은 “교육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고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문제”라며 이를 바로잡을 대책을 마련하도록 당부도 했다. 박 대통령이 60여년 대한민국의 역사를 창조한 선각적 지도자들의 발자취를 좇을 수 있을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