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은행장 책임 묻는 방법도 바꿔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자본에조차 사회적 책임 묻는 세태
주주보다 상생지원이 우선이라면
부정적 결과에 책임지우지 말아야"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객원논설위원
주주보다 상생지원이 우선이라면
부정적 결과에 책임지우지 말아야"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객원논설위원
수주잔량이 9조원인 조선사, 중동에서 8조원대 공사를 수주한 건설사라 해도 회사채 차환발행이 어렵다면 은행지원 없이는 도산한다. 첨단기술로 창업한 벤처기업, 신용이 덜 쌓인 중소기업도 은행지원 없이는 성장이 어렵다. 은행이 그런 회사들에 대한 지원을 망설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은행 경영진이 지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는 것도 큰 이유다.
지금은 고속성장시대가 아니다. 정부의 독려로 은행이 위험한 사업 지원에 뛰어들고, 큰 실적을 내서 은행장이 스타가 되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일이 없다. 결과가 나쁠 때 책임질 일만 남는다. 이제는 모든 업무가 매뉴얼과 법률의견에 따라 진행된다. 선진형이 된 것이다. 법률은 왜 9조원을 벌 수 있는 회사를 지원하지 않았느냐고 은행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왜 은행 돈 900만원을 손해 보게 했느냐는 책임만 묻는다.
주식회사의 경영진은 회사와 주주에게 법률적 책임을 진다. 요즘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상생협력의 개념이 등장해 기업 경영을 회사와 주주 이익에만 집중해서 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지만, 이는 정치·사회적 조류이지 기업 경영진의 법률적 책임 원리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아직 아니다. 극단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상생협력의 경영을 펼치던 회사가 어려워지면 그때는 사회와 정부가 지원해 줄 것인가. 그 경영책임을 면제해 줄 것인가.
지난 수년간 잘 경영돼 왔으나 외부적 요인으로 어려워진 기업과 그 경영진에 대해서는 비판 일색이다. 경영실책은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그 기업은 사회적 역할을 다했고 실적이 좋을 때 돈을 번 주주, 채권자도 있을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돈 번 사람들은 조용히 사라진다. 돌아와서 경영진을 옹호해 주지 않는다. 그간 많은 세금이 납부됐고 무엇보다도 임직원들과 협력업체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교육을 받았다. 고용을 유지한 것보다 더 큰 사회적 기여가 있는가. 고용불안은 거의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이다. 경제민주화와 상생협력은 기업이 잘 될 때만 적용되고 기업이 어려워지면 엄정한 시장경제 원리와 법률적 책임 원칙이 적용되는 모순은 노련한 경영자들에게 결국 궂은날에 대비한 헤징을 유혹할 것이다.
은행 경영진도 은행과 주주들의 이익을 지킬 의무를 진다. 대법원 판례는 은행 경영진의 책임을 일반 기업 경영진 책임보다 더 엄격하게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은행이 일반 주식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은행업의 특수성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은행법은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을 그 목적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 은행법은 은행의 수익극대화가 아닌 건전성 유지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며 은행 지배구조와 사업에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이나 아직 검증 안 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행 경영진의 책임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은가이다. 약 10년 전에,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면 당장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결정도 상법이 말하는 ‘경영상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하급심 판결이 나온 적이 있다. 당시 매우 전향적인 판결로 여겨졌다. 시간이 지나고 세상이 바뀌어서 경제민주화가 국가 공동체 운영의 핵심 원칙으로 대두됐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선거를 통해 표출된 공동체의 총의가 그러하다면, 그리고 은행이 큰 이익을 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사회적인 분위기라면, 은행 경영자 책임과 관련해 그 판결의 취지도 다시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분위기가 바뀌면서 자본에조차도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은행의 이익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 사회적 책임을 의식한 은행 경영진의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건전성을 해치는 위법이나 중과실이 없는 한 결과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 하물며 정부가 은행 경영진의 결과책임을 거론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할 것이다.
김화진 <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객원논설위원 hjkim7@snu.ac.kr >
지금은 고속성장시대가 아니다. 정부의 독려로 은행이 위험한 사업 지원에 뛰어들고, 큰 실적을 내서 은행장이 스타가 되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일이 없다. 결과가 나쁠 때 책임질 일만 남는다. 이제는 모든 업무가 매뉴얼과 법률의견에 따라 진행된다. 선진형이 된 것이다. 법률은 왜 9조원을 벌 수 있는 회사를 지원하지 않았느냐고 은행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왜 은행 돈 900만원을 손해 보게 했느냐는 책임만 묻는다.
주식회사의 경영진은 회사와 주주에게 법률적 책임을 진다. 요즘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상생협력의 개념이 등장해 기업 경영을 회사와 주주 이익에만 집중해서 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지만, 이는 정치·사회적 조류이지 기업 경영진의 법률적 책임 원리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아직 아니다. 극단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상생협력의 경영을 펼치던 회사가 어려워지면 그때는 사회와 정부가 지원해 줄 것인가. 그 경영책임을 면제해 줄 것인가.
지난 수년간 잘 경영돼 왔으나 외부적 요인으로 어려워진 기업과 그 경영진에 대해서는 비판 일색이다. 경영실책은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그 기업은 사회적 역할을 다했고 실적이 좋을 때 돈을 번 주주, 채권자도 있을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돈 번 사람들은 조용히 사라진다. 돌아와서 경영진을 옹호해 주지 않는다. 그간 많은 세금이 납부됐고 무엇보다도 임직원들과 협력업체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교육을 받았다. 고용을 유지한 것보다 더 큰 사회적 기여가 있는가. 고용불안은 거의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이다. 경제민주화와 상생협력은 기업이 잘 될 때만 적용되고 기업이 어려워지면 엄정한 시장경제 원리와 법률적 책임 원칙이 적용되는 모순은 노련한 경영자들에게 결국 궂은날에 대비한 헤징을 유혹할 것이다.
은행 경영진도 은행과 주주들의 이익을 지킬 의무를 진다. 대법원 판례는 은행 경영진의 책임을 일반 기업 경영진 책임보다 더 엄격하게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은행이 일반 주식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은행업의 특수성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은행법은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을 그 목적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 은행법은 은행의 수익극대화가 아닌 건전성 유지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며 은행 지배구조와 사업에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이나 아직 검증 안 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행 경영진의 책임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은가이다. 약 10년 전에,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면 당장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결정도 상법이 말하는 ‘경영상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하급심 판결이 나온 적이 있다. 당시 매우 전향적인 판결로 여겨졌다. 시간이 지나고 세상이 바뀌어서 경제민주화가 국가 공동체 운영의 핵심 원칙으로 대두됐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선거를 통해 표출된 공동체의 총의가 그러하다면, 그리고 은행이 큰 이익을 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사회적인 분위기라면, 은행 경영자 책임과 관련해 그 판결의 취지도 다시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분위기가 바뀌면서 자본에조차도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은행의 이익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 사회적 책임을 의식한 은행 경영진의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건전성을 해치는 위법이나 중과실이 없는 한 결과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 하물며 정부가 은행 경영진의 결과책임을 거론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할 것이다.
김화진 <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객원논설위원 hjkim7@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