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희 캐리어에어컨 회장이 19일 서울 양평동 캐리어에어컨 연구개발(R&D)센터에서 틈새 전략의 성공 비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강성희 캐리어에어컨 회장이 19일 서울 양평동 캐리어에어컨 연구개발(R&D)센터에서 틈새 전략의 성공 비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나는 사력을 다할 생각이다. 여러분 중 회사에 목숨 걸 사람 있나. 없을 것이다. 나는 목숨을 걸었다. 그러니 섣불리 관행대로 안일하게 일할 생각은 하지 마라.”

강성희 캐리어에어컨 회장은 2011년 1월 미국 캐리어의 한국법인을 인수한 뒤 직원들과의 첫 만남에서 이렇게 공언했다. 그는 “이익이 날 때까지 회사 카드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해 월급을 한 푼도 안 받았다. 대신 디자인 개발에 투자하고 마케팅에 주력했다.

4년간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는 인수 첫해 흑자로 돌아섰다. 당시 매출은 2760억원. 올해는 4400억원이 목표다. LG와 삼성이 양분하고 있는 국내 에어컨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 점유율을 15%대로 끌어올렸다.

19일 서울 양평동 캐리어에어컨 연구개발(R&D)센터에서 강 회장을 만났다. 기아차 협력사에서 일하던 강 회장은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회사가 무너지자 2000년 특수목적차 전문기업 오텍을 창업했다. 이 중소기업을 기반으로 2011년 캐리어의 한국법인을 인수했다. ‘캐리어’ 브랜드도 계약을 맺고 계속 쓰기로 했다.

캐리어는 세계적인 에어컨 회사다. 100년이 넘는 역사에 브랜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캐리어 한국법인이 매물로 나왔을 당시 선뜻 인수자가 나서지 않았다. 삼성 LG 등 대기업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이런 좋은 브랜드를 갖고 적자를 내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대기업이 관심을 두지 않는 상업용 냉장고 등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비록 강 회장은 틈새시장을 파고들었지만 시야는 세계를 향하고 있다. 그는 “기존 캐리어 제품은 탁월한 성능에 비해 디자인과 고객 친화력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회사 인수 후 이 같은 문제점들을 하나둘 개선했고, 그러자 해외 판매가 꾸준히 늘었다. 베트남의 롯데쇼핑센터와 중국 옌성의 기아자동차 제3공장 공조 설비도 캐리어가 따냈다. 캐리어에어컨은 앞으로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세울 계획이다.

모기업인 오텍의 전략 역시 철저한 틈새시장 공략이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구급차, 장애인 전용차, 냉장차 등 특수목적차량으로 시장을 뚫어 국내 1위 자리를 다졌다. 강 회장은 “국내에서는 구급차가 8000만원 정도인데 일본은 3억~4억원대”라며 “선진국으로 갈수록 구급차, 장애인차에 대한 수요도 커진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차량과 공조시스템 등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상황에 맞춰 세기를 조절하는 인버터 방식을 차량에 접목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강 회장은 “올 9월 차량용 냉동기에 인버터를 적용하면 세계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지 않은 상태에서 배터리로 가동되는 무시동 에어컨 관련 특허를 출원하고 본격적인 시판을 준비하고 있다.

캐리어냉장과 캐리어에어컨을 증시에 상장할 계획도 세워뒀다. 그는 “연구개발에 필요한 비용을 대출받아 쓰고 싶진 않다”며 “시장만 좋으면 최대한 서둘러 기업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현/정인설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