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화성=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자동차 부품으로 들어가는 석유화학제품인 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고도의 기술력과 첨단 생산설비가 필요한 제품이다. 금속보다 무게가 훨씬 가벼우면서도 견고하기 때문에 연비를 개선하려는 자동차업체들은 사활을 걸고 엔지니어링플라스틱 사용 비중을 높이려 하고 있다.

자동차업체들과 함께 엔지니어링플라스틱 부품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업체들은 거의 대부분 대기업이다. 국내에는 현대EP, 호남석유화학, 코오롱플라스틱 등이 있고 해외에서는 듀폰, 바스프, 로디아 등이 만들고 있다.

이런 치열한 시장에서 눈에 띄는 국내 중소기업이 하나 있다. ‘코프라’라는 직원 수 80여명의 자그마한 회사다. 업력도 16년(1997년 10월 설립)밖에 되지 않는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 제품을 현대자동차와 GM 등 유수의 자동차회사들이 쓰고 있다.

○염화칼슘 부식 사고가 ‘기회’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자동차 부품을 플라스틱으로 교체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말이다. 고효율 연비를 자랑하는 일본 업체들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경량화가 시급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제설제로 쓰이는 염화칼슘이 운행 중인 차량으로 튀어들어가 기개발되어 글로벌업체로부터 공급된 플라스틱으로 만든 자동차 부품(라디에이터 탱크)을 부식시켰다. 자동차를 더 가볍게 만들기 위해 탱크 소재를 금속에서 플라스틱으로 바꾼 직후였다. 이는 자동차업체에 크게 이슈화 됐다.

그러나 자동차회사가 ‘경량화'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부랴부랴 듀폰 등 글로벌 기업들과 국내 대기업들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용역을 의뢰했다. 외국 기업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내놓으라는 ‘돈’이 문제였고, 국내에서 거래하는 협력사들 중에서는 부식 문제를 풀 기술을 갖고 있는 곳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매출 200억원에 불과한 국내 중소기업이 해법을 들고나왔다. 플라스틱 부품업체이긴 하지만 범용 제품만 생산하던 공영플라테크(코프라의 옛 이름)라는 회사였다. 이 회사는 염화칼슘이 닿아도 썩어 들어가지 않는 내구성을 갖춘 플라스틱(폴리머)을 샘플로 현대차에 보냈다. 놀랍게도 이 샘플로 만든 라디에이터는 염화칼슘에 닿아도 부식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코프라는 2006년 현대차의 엄격한 품질검사를 모두 통과했고, 독점 납품권까지 따냈다. 평범한 플라스틱 부품을 만들던 회사가 글로벌 대기업들과 경쟁하는 ‘강소기업’으로 재탄생한 순간이었다.

○사업 초기부터 자동차용 부품 개발


코프라가 현대차 협력사가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일이 아니다. 산업용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사업부터 시작하긴 했지만, 목표는 처음부터 ‘자동차용 부품’이었다. 기계와 가구, 전자제품에 쓰이는 산업용 폴리머를 생산하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자동차용 부품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아부었다. 이 회사는 엔지니어링플라스틱의 원재료인 레진에 첨가제 등을 섞어 금속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도를 높인 특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체 직원의 25%를 연구개발(R&D) 인력으로 뽑아 집중 투자한 결과였다.

코프라는 염화칼슘 부식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새로 개발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샘플을 자동차 회사들에 줄기차게 보냈다. 하지만 업력이 짧고 자동차용 부품이라고는 만들어본 적도 없는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계속 맞았다. 코프라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동차업계의 핫 이슈로 떠오른 염화칼슘 부식 사건은 내구성이 강한 폴리머로 승부하려 했던 코프라에 절호의 기회였다.

한상용 코프라 사장은 “대기업을 제외하면 코프라가 유일한 자동차 부품용 폴리머 제조업체”라며 “도어 핸들을 비롯해 엔진 실린더의 헤드커버, 기어 시프트 레버, 휠 샤프트 커버, 엔진 커버 등 다양한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프라가 만든 엔지니어링플라스틱 원료는 한라공조와 두원공조 등 250여개 자동차 협력사를 통해 현대차와 기아차, GM 등에 공급되고 있다. 현대차는 중·소형 승용차에서부터 그랜저, 제네시스, 에쿠스 등 대형 승용차에도 코프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원료를 있다.

코프라는 공영플라테크라는 회사 이름을 2005년 7월 지금의 사명(社名)으로 바꿨다. 2010년 11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지난해 매출 884억원에 영업이익 71억원을 냈다. 증권업계는 코프라가 올해 매출 120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괄공정 구축…SK도 인정


코프라는 중소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폴리머 일괄공정을 갖춘 회사다. 원재료(레진)만 외부에서 사올 뿐 배합-압출-냉각-건조-검사-포장-출하 등 모든 공정을 자체적으로 소화한다. 코프라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엔진 분야 폴리머에 특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이종수 코프라 연구소장은 “자동차 엔진 부위는 다른 곳보다 훨씬 높은 내열성을 갖춰야 한다”며 “자체적으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남들이 하지 못하는 엔진부품에 적합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상용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코프라는 다공성 특수필러를 사용하여 가볍게 만든 ‘다공성 폴리머’와 단섬유강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보다 강도가 두 배 높은 신소재 장섬유보강수지(LFRT)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놓은 상태다. 다공성 폴리머는 내부에 지름 5~5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의 미립자 구멍을 내 기존 대비 무게를 최대 25% 줄일 수 있는 소재다.

코프라가 도전하는 또 다른 신소재는 내열성이 뛰어나면서도 무게가 매우 가벼운 ‘슈퍼 엔프라(예, PPS, PCT 등)’다. 지난해 코프라 지분 10.3%를 48억원에 인수한 SK케미칼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SK케미칼로부터 지분 투자를 받았을 정도로 코프라는 업계 전체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 자동차용 폴리머 시장은 2007년 3000억원에서 2011년 6000억원으로 두 배로 뛰었다. 올해는 1조원 규모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부품에서 폴리머가 차지하는 비중은 15~18% 정도여서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속보다 성형(成形)이 쉽기 때문에 한층 다양하고 파격적인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한 사장은 “자동차 소재를 고기능성 플라스틱으로 바꾸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자동차가 가벼워질수록 코프라의 존재감은 커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코프라를 글로벌 톱 자동차 부품·소재 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화성=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