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中 전문가가 본 '삼성 신경영 20년'…"삼성, 기술·브랜드로 고객 머리·가슴 사로잡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삼성은 어떻게 초일류 기업이 됐나.’
20일 한국경영학회가 삼성 신경영 20주년을 맞아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 10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옛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이 행사엔 국내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온 유명 경영학자와 언론인 등이 강연자로 나서 삼성 신경영의 비밀을 풀어냈다.
케빈 켈러 다트머스대 교수 "지금까지 도전자였지만 이제는 리더로 올라서"
“15년 전 ‘삼성이 소니를 추월할 것’이라고 했으면 사람들은 다 미쳤다고 말했을 겁니다. 5년 전 모바일 부문에서 ‘곧 삼성이 애플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언했어도 반응은 마찬가지였겠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다 삼성이 이뤘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죠.”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인 케빈 켈러 다트머스대 교수(사진)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삼성의 성공 기반은 ‘기술’이고 이를 뒷받침한 것이 ‘브랜드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사로잡았다”고 평가했다.
켈러 교수는 “삼성은 전 세계 지역별 소비자의 성향을 제품에 반영하고 있다”며 “그런 첨단제품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해 감성적으로 다가갔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삼성의 의지와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10년 전 삼성 마케팅에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를 꾸준히 개선시켰다”며 “특히 미국과 유럽 기업들에 마음을 열고 배우면서 브랜드를 키워나간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신경영 20주년 이후 삼성이 나아가야 할 마케팅 방향도 제시했다. 켈러 교수는 “삼성의 디자인은 이미 탁월하다”며 “앞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갤럭시처럼 간명한 서브브랜드를 더 많이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삼성은 지금까지 도전자였지만 이제 리더로 올라섰다”며 “혁신의 주인공이 돼 새로운 것을 스스로 쟁취할 수 있도록 사고 자체를 바꿔 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타야마 히로시 와세다대 교수 "스피드와 타이밍이 품질경영 이끈 힘"
“스피드와 타이밍이 삼성의 품질경영을 이끈 가장 큰 성공 요인입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목표를 달성하는 탄탄한 팀워크와 끊임없는 의견 교환을 통한 추가 비용 절감은 삼성인들의 힘이죠.”
가타야마 히로시 와세다대 교수(사진)는 ‘삼성의 인재와 기술을 통한 품질경영’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인재와 기술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이를 기반으로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삼성인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불필요한 과정을 없애고 표준화된 개발 단계를 만들어 놓은 후 신속한 의사 결정을 이끌어냄으로써 ‘스피드 경영’을 실천해왔다는 것이다.
업황 주기가 불규칙하고 대규모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삼성이 두각을 나타낸 데는 타이밍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가타야마 교수는 “큰 그림에서 산업 주기와 방향을 보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업 감각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타이밍’과 관련해 “때를 놓치지 말고 대담하게 공격하라”거나 “21세기 사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이 회장의 발언을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또 제품 개발 시간이 이전에 비해 절반으로 단축된 사례와 함께 전문경영인 체제가 아닌 오너 기업의 강점과 성과도 강조했다.
가타야마 교수는 삼성의 인재경영도 조직의 우수성과 사업 전략의 일관성에 크게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끈끈한 조직 내에서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추가 비용을 절감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쉬바오캉 前 인민일보 대기자 "中 개혁 이끈 리더들 삼성 신경영 영향 받아"
“한 페이지를 번역하면 그것을 가져가 바로 인쇄에 들어갔습니다. 4일 만에 번역본이 완성됐어요. 삼성의 속도를 보여준 것이죠.”
1995년 삼성 신경영의 중국어판 번역작업을 했던 쉬바오캉 전 인민일보 대기자(사진)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서툰 한국말로 풀어나간 그의 강연은 18년 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해 12월 장쩌민 당시 주석이 중국의 수장으로는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방한 5일 전 인민일보 서울지부장이던 그에게 연락이 왔다. 장 주석에게 방한 선물로 줄 신경영 책자의 번역을 부탁했다. 이 책자는 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선언 발언을 모아 만든 것으로 품질경영과 변화의 필요성, 인간미와 도덕성 회복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바쁜 일정 때문에 고민하던 쉬 전 대기자는 먼저 책을 읽어보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과 변화의 원칙이 머리를 뚫고 들어오는 기분이어서 절로 흥분이 됐다”고 했다. 결국 개혁과 개방을 준비하는 중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번역 요청을 받아들였고, 장 주석이 방한하기 전날 완성했다.
신경영 책은 장 주석이 묵은 신라호텔 로열스위트룸 책장에 꽂아뒀다. 그는 어김없이 책을 봤고 몇 번이고 다시 봤다고 한다. 쉬 전 대기자는 “중국 개혁을 이끌어가는 리더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후 중국의 미래 지도자들이 교육 과정 중 하나로 삼성에 와서 신경영을 배웠다”며 “시진핑 주석을 포함해 현재 장관이나 차관, 성장이나 서기 등 고위직 400여명이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20일 한국경영학회가 삼성 신경영 20주년을 맞아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 10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옛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이 행사엔 국내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온 유명 경영학자와 언론인 등이 강연자로 나서 삼성 신경영의 비밀을 풀어냈다.
케빈 켈러 다트머스대 교수 "지금까지 도전자였지만 이제는 리더로 올라서"
“15년 전 ‘삼성이 소니를 추월할 것’이라고 했으면 사람들은 다 미쳤다고 말했을 겁니다. 5년 전 모바일 부문에서 ‘곧 삼성이 애플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언했어도 반응은 마찬가지였겠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다 삼성이 이뤘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죠.”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인 케빈 켈러 다트머스대 교수(사진)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삼성의 성공 기반은 ‘기술’이고 이를 뒷받침한 것이 ‘브랜드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사로잡았다”고 평가했다.
켈러 교수는 “삼성은 전 세계 지역별 소비자의 성향을 제품에 반영하고 있다”며 “그런 첨단제품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해 감성적으로 다가갔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삼성의 의지와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10년 전 삼성 마케팅에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를 꾸준히 개선시켰다”며 “특히 미국과 유럽 기업들에 마음을 열고 배우면서 브랜드를 키워나간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신경영 20주년 이후 삼성이 나아가야 할 마케팅 방향도 제시했다. 켈러 교수는 “삼성의 디자인은 이미 탁월하다”며 “앞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갤럭시처럼 간명한 서브브랜드를 더 많이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삼성은 지금까지 도전자였지만 이제 리더로 올라섰다”며 “혁신의 주인공이 돼 새로운 것을 스스로 쟁취할 수 있도록 사고 자체를 바꿔 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타야마 히로시 와세다대 교수 "스피드와 타이밍이 품질경영 이끈 힘"
“스피드와 타이밍이 삼성의 품질경영을 이끈 가장 큰 성공 요인입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목표를 달성하는 탄탄한 팀워크와 끊임없는 의견 교환을 통한 추가 비용 절감은 삼성인들의 힘이죠.”
가타야마 히로시 와세다대 교수(사진)는 ‘삼성의 인재와 기술을 통한 품질경영’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인재와 기술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이를 기반으로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삼성인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불필요한 과정을 없애고 표준화된 개발 단계를 만들어 놓은 후 신속한 의사 결정을 이끌어냄으로써 ‘스피드 경영’을 실천해왔다는 것이다.
업황 주기가 불규칙하고 대규모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삼성이 두각을 나타낸 데는 타이밍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가타야마 교수는 “큰 그림에서 산업 주기와 방향을 보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업 감각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타이밍’과 관련해 “때를 놓치지 말고 대담하게 공격하라”거나 “21세기 사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이 회장의 발언을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또 제품 개발 시간이 이전에 비해 절반으로 단축된 사례와 함께 전문경영인 체제가 아닌 오너 기업의 강점과 성과도 강조했다.
가타야마 교수는 삼성의 인재경영도 조직의 우수성과 사업 전략의 일관성에 크게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끈끈한 조직 내에서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추가 비용을 절감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쉬바오캉 前 인민일보 대기자 "中 개혁 이끈 리더들 삼성 신경영 영향 받아"
“한 페이지를 번역하면 그것을 가져가 바로 인쇄에 들어갔습니다. 4일 만에 번역본이 완성됐어요. 삼성의 속도를 보여준 것이죠.”
1995년 삼성 신경영의 중국어판 번역작업을 했던 쉬바오캉 전 인민일보 대기자(사진)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서툰 한국말로 풀어나간 그의 강연은 18년 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해 12월 장쩌민 당시 주석이 중국의 수장으로는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방한 5일 전 인민일보 서울지부장이던 그에게 연락이 왔다. 장 주석에게 방한 선물로 줄 신경영 책자의 번역을 부탁했다. 이 책자는 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선언 발언을 모아 만든 것으로 품질경영과 변화의 필요성, 인간미와 도덕성 회복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바쁜 일정 때문에 고민하던 쉬 전 대기자는 먼저 책을 읽어보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과 변화의 원칙이 머리를 뚫고 들어오는 기분이어서 절로 흥분이 됐다”고 했다. 결국 개혁과 개방을 준비하는 중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번역 요청을 받아들였고, 장 주석이 방한하기 전날 완성했다.
신경영 책은 장 주석이 묵은 신라호텔 로열스위트룸 책장에 꽂아뒀다. 그는 어김없이 책을 봤고 몇 번이고 다시 봤다고 한다. 쉬 전 대기자는 “중국 개혁을 이끌어가는 리더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후 중국의 미래 지도자들이 교육 과정 중 하나로 삼성에 와서 신경영을 배웠다”며 “시진핑 주석을 포함해 현재 장관이나 차관, 성장이나 서기 등 고위직 400여명이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