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드라마보다 찍는 환경이 좋긴 하지만 제 그릇의 크기가 너무 작아요.
부족한 점 채워가다 보면 성취감도 들고 언젠간 멋진 영화의 한 장면을 연기할 수 있겠죠.
“저는 계속해서 어떤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생각은 없어요. 그래서 이미지 변신에 대한 부담이 없죠. 단지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부족한 점을 메워가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일까. 신세경의 행적을 살펴보면 또래 배우들과는 사뭇 다른 배역들을 선택했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2009)의 어린 천명공주 역을 맡으며 주목받았던 그는 ‘지붕 뚫고 하이킥’을 거쳐 영화와 드라마에 두루 얼굴을 비쳤다. 2011년에는 영화 ‘푸른소금’의 킬러 세빈 역을 맡아 배우 송강호와 호흡을 맞췄다. 연이어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말 못하는 궁녀 소이 역으로 극을 긴장감 있게 이끌며 시청자의 호평을 받았다. 의외의 사실은 그녀가 연기에 어려움을 느끼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는 것이다.
“사실 ‘뿌리깊은 나무’ 때는 자신감이 바닥이었어요. 그때 저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고 그 후로 부족한 점을 고쳐나가는 데 집중했어요.”
이런 성장통을 겪은 후 지난해 SBS 드라마 ‘패션왕’에 이어 올해는 정통 멜로에 도전했다. 최근 막을 내린 MBC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극본 김인영, 연출 김상호애쉬번)의 서미도 역으로는 연기력과 시청률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다. 작품을 마치고 이제야 한숨을 돌렸다는 그의 눈빛에서는 ‘아쉬움’과 ‘후련함’이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읽혔다.
“굉장히 후련해요. 스스로는 내적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작품이라 생각해요.”
‘인생의 한 순간, 뜨거운 감정의 열풍에 휩싸인 주인공들의 사랑을 그리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남자가 사랑할 때’는 초반 화제 몰이에는 성공했지만 막판 12.1%의 다소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신세경은 “드라마를 할 때면 항상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생기는 것 같다”며 “드라마를 연기하는 배우라면 순발력 있게 적응해서 단시간에 정확한 감정을 표현해 내야 하는데 그 부분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남자가 사랑할 때’를 하면서 아예 포기하고 넋 놓고 있는 것보다는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할 때 더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연기만 잘하는 것도 아니다.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 영화 ‘푸른소금’ OST 앨범 수록곡 ‘여름날의 블루’(2011), 인디밴드 스웨덴세탁소와 함께한 ‘넌 달콤했어’ 앨범(2012)을 통해 뛰어난 음악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노래는 정말 못하는데 다 프로듀싱을 잘 해줘서 그런 것”이라며 손사래를 치던 그는 “음악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쪽으로 넘어가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웃음)며 “앞으로 연기에만 집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자가 사랑할 때’를 마친 그의 모습엔 나이테처럼 겸손함과 옹골진 내면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어 앞으로 내디딜 발걸음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드라마든 영화든 도전해야죠. 최근에 든 생각인데 영화가 드라마보다 찍는 환경이 좋고 여유롭긴 하지만 제가 그 장르를 홀로 채우기에는 부족한 것 같아요. 때론 제 그릇이 너무 작아서 다 담기에는 넘치는 느낌…. 그래서 영화는 감정이 더 풍부해지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졌을 때, 그리고 더 잘할 수 있을 때 도전하려고 해요. 새삼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호호.”
김광국 텐아시아 기자 realjuki@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