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사진). 그를 빼놓고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를 말할 수 있을까. 1970년대 서슬 퍼런 폴란드 공산당 체제 아래 “공산당은 진정한 노동자의 당이 아니다”며 ‘자유노조’를 창립한 그다. 1980년 8월 전설적인 ‘조선소 파업’을 일으켜 직접 공산당 정권과 싸웠다. 여러 차례 옥에 갇히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1989년 이후 진행된 폴란드의 민주화 및 시장경제체제 도입 등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앞서 1983년엔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만난 바웬사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은 한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노동운동가들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개혁을 촉구하긴 했지만 시장경제의 원칙이 무너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도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바웬사는 인터뷰 내내 ‘새 시대’를 강조했다. 공산주의를 극복했지만 여러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자본주의도 진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위가 그 증거라는 설명이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반(反) 자본주의 시위에 초청받았다고 했다. 그는 시위의 핵심을 ‘일자리 문제’로 결론 내렸다.

“내가 만난 누구도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갖지 않았다. 소유를 공동으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하다.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할까. 바웬사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일자리 창출은 정부나 관료들의 의무가 아닌 사업가의 일”이라며 “많은 시위대는 무조건적인 일자리를 달라는 게 아니라 일을 통해 세금을 내고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바웬사는 ‘교육’을 최우선 순위로 들었다. “뒤처진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교육하면 실업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는 뜻이다. 바웬사는 민주주의의 위기도 새 시대를 맞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많은 국가들이 어제 선거로 대표자를 뽑고 그 다음날 시위를 일으켜 그를 쫓아낸다”는 점에서다.

노동유연성에 대해서도 물었다. 폴란드의 노동유연성은 유럽 전체에서 최고 수준이다. 폴란드 노동운동의 ‘대부’인 바웬사에겐 ‘노동자의 패배’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바웬사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유연했다.

그는 ‘자유무역’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에는 풍요한 땅이 있지만, 폴란드의 농토는 척박한 만큼 서로의 장단점을 살리는 자유무역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웬사는 “폴란드가 농사를 지으려고 비료를 마구 뿌려대는 통에 폴란드 농산물엔 화학약품이 가득하다”며 “대신 우크라이나의 좋은 농산물을 수입하고, 공산품을 만들어 수출하면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샤바=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