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양적완화 ‘출구전략 로드맵’ 발표에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우선 Fed가 왜, 지금 출구전략을 발표했느냐부터가 의문이다. Fed는 지난해 9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3차 양적완화를 발표하면서 실업률이 6.5% 아래로 내려가거나 물가상승률이 2.5%를 넘지 않는 한, 양적완화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 미국 경제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충족시킨 상태가 아니다. 실업률은 7.5% 안팎, 인플레이션율은 2% 미만이다.

달라진 경기 해석도 석연치 않다. 3차 양적완화를 확대하던 지난해 12월 Fed는 “경기가 점진적 속도로 개선되고 있지만 충분한 정책수단을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지난주에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개선된다면 올해 말부터 양적완화 속도를 조절해 내년 중반 중단할 수도 있다”로 바뀌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경기를 매우 낙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경기가 호전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출구전략을 발표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노무라증권의 전략가 밥 잔주아는 “출구전략 발표는 실업률과도 물가와도 무관하며 악화일로로 치닫는 자산버블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양적완화가 경기는 살리지 못한 채 주가와 집값만 끌어올렸는데 이런 자산 버블이 또다시 미국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정도가 되자 Fed가 퇴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것도 출구전략이 미국의 경기회복과는 무관하다는 방증이라는 얘기다. 심지어 내년 2월 퇴임을 앞둔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의 뒷감당이 걱정되자 꼬리자르기 식으로 출구전략을 발표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사실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린다는 양적완화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무모한 정책이었다.

전문가들은 비전통적(unconventional) 통화정책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화폐적 착각은 투기적 거품을 만들고 빈부격차를 조장하는 속성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경 사설이 누차에 걸쳐 위험성을 경고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