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는 어원적으로 손으로 부쳐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의 ‘부’와 대나무·도구라는 뜻의 ‘채’자가 어우러진 우리말이다. 부채는 부챗살에 깃이나 비단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형의 방구부채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이식 부채(접선)로 나뉜다. 접이식 부채는 고려시대에 생겼으나 인기를 끌어 임진왜란 이후엔 방구부채보다 많이 쓰였다고 한다.
부채를 가장 많이 활용한 계층은 조선시대 양반계층이었다. 특히 접이부채는 양반들이 겨울철에도 휴대해야 할 만큼 필수품이기도 했다. 여름 선물로도 부채는 으뜸으로 꼽혔다. 조선 태종 때부터 궁중에선 선공(부채장인)을 둬 부채를 제작해 놨다가 더위가 시작되는 단오날(음력 5월5일) 임금이 직접 신하들에게 나눠줬다는 기록이 있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외에도 잠깐의 비와 햇빛을 가려주는 등의 여덟 가지 덕을 지녔다는 부채찬가도 있다.
양반들에게는 위세품의 하나였고 하인에게 무언가를 지시할 때 쓰는 지휘봉이기도 했다. 권위와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부채도 만들어졌다. 제갈량이 삼군을 지휘하면서 학의 깃털로 만든 백우선(白羽扇)을 부치며 안개를 걷히게 하는 등 조화를 부렸다는 얘기는 부채의 용도를 신비주의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중종반정 때 박원종은 부채를 흔들며 군사들을 지휘했는데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는 기록도 있다.
서양에서는 중세 때 부채가 잠시 사라졌다가 십자군 전쟁 이후 재등장했다는 주장도 있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부채를 수입했다고 한다. 17세기 이후 부채는 귀부인이 자기 얼굴을 가리거나 신분을 드러내기 위한 용도로 널리 쓰였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늘 부채를 손에 들고 다녔으며 그녀의 초상화에는 항상 부채가 그려졌다.
최근 대형마트에서 부채 판매량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정홍원 국무총리 등 장·차관들이 국무회의에서 부채를 부치는 사진도 보도되고 있다. 그저 전력난 때문에 찌는 더위를 못 이겨 부치는 부채다. 하지만 국정에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부채라면 얼마나 좋을까.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