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경주 최부자
‘날아라 노동’ 저자 자격으로 지난 토요일 모 대학 노동법 강의에 초청을 받았다. 편의점 본사가 매출 이익의 35~60%를 가져가며, 최근 어떤 기업은 44억원의 정부 돈까지 받아 위장 협력업체를 운영했다고 하는데 담당 강사가 대뜸 그런다. “경주 최부자가 부자가 된 이유는 당시 소작에게 3을 주던 것을 5를 줬기 때문입니다.”

7 대 3의 비율로 소작을 부치던 다른 지주와 달리 5 대 5의 비율로 바꾸자 그 지역 모든 소작인은 최부자에게 좋은 땅이 나올 때마다 알리고 그 땅을 산 최부자는 땅도 늘고 소작도 늘어 자연스럽게 부자가 됐단다.

‘최부자 없다’고 한탄만 하랴. 스펙 쌓는 것 이상으로 스펙을 지키는 것, 일하는 모든 사람이 시민의 권리인 노동권을 지키는 것이 최부자 만들기의 지름길이다. 강의를 끝낸 뒤 곧바로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1982년 대학에 입학해 1998년 졸업한 뒤 대학원에 진학할 때 함께 공부한 동기라서 각별하다. 덕분에 10년 혹은 15년 정도 어린 대학원 동기들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한 후배 왈, “어제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누나가 연설하는 것 들었어요.”

무엇이라 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내년 최저임금이 5910원은 돼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이름을 바꾸면 시급이 오르냐”는 댓글도 인용했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름을 공모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자마자 수백개의 댓글이나 트윗에서 “골목상권 죽어가니 재래시장을 전통시장으로 바꾸자는 격”이고, “민영화의 어감이 나쁘니 선진화로 바꾸자는 이명박 정부의 계승”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던 것도 덧붙였다.

대기업은 최저임금 올리면 중소기업이 죽는다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지만 공정거래를 통해 중소기업 이익을 늘리고, 여력이 생긴 중소기업이 최저임금 이상을 주면 문제는 해결된다. 국민 세금으로 영세사업장을 지원하는 정책도 가능하다. 사회보험료 지원부터 다양한 소득보장 정책까지 찾아보면 방법은 꽤 많다.

이명박 정부 때도 연평균 30만개 내외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오늘 만든 일자리가 내일이면 간 곳이 없다. 사라지는 아침이슬은 예쁘지만 사라지는 일자리는 좌절이다. 경주 최부자가 이 땅에 없는 것을 탓하기 전에 공정한 일자리 생태계 만들기에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 결혼한 후배가 낳을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은수미 < 민주당 국회의원 hopesumi@n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