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60여개 수출 대기업이 미국 관세청으로부터 ‘자유무역협정(FTA) 원산지 사후검증을 위한 사전질의서’를 받으면서 업계가 비상이라는 소식이다. 미국 정부가 한·미 FTA에 따라 관세혜택을 받은 국내 기업들이 원산지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 직접 검증에 나섰지만, 검증절차가 까다로워 자칫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출 대기업은 물론 부품이나 원자재를 납품하는 수천 곳의 중소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사후 검증에 실패하면 관세 추징에다 과태료까지 물어야 하고 한·미 간 관세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FTA 사후 검증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나라가 미국이다. 사후검증을 한국 관세청에 위탁하는 유럽연합(EU)과 달리 미국은 입증 책임을 개별 기업에 직접 묻는 절차를 고수하고 있다. 미국이 FTA 원산지 검증을 별러왔다는 소문도 있고, 더구나 미국 법률계는 원산지 규정을 둘러싼 분쟁을 새로운 시장으로 보고 있다고 할 정도다. 미 관세청도 본보기가 될 만한 곳을 골랐을 가능성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FTA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준비한 기업만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특히 원산지 규정은 국가마다 품목에 따라 제도가 천차만별이다. 허술하게 대응하다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문제는 FTA 체결국이 늘어나면서 FTA 규정 준수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스파게티볼 효과’다. 일부 중소기업에서는 차라리 관세혜택을 안 받는 게 속 편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지금도 FTA 활용률이 대기업은 76.9%인데 비해 중소기업은 60.7%에 불과하다. 이를 더 높여야 한다.

정부는 수출기업을 위해 원산지 관련 상담과 교육을 했다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현실성 있는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세청 무역협회 KOTRA 등 그 많은 무역관련 부처나 기관들은 바로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 수출 중소기업들의 업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관기관에서 검증 업무를 대행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절차와 규정을 간소화하기 위해 미 정부와 협상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