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버냉키 쇼크'의 확산을 경계한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출구전략을 시사한 이후 국내외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위기 이후 완화 일변도로 진행돼 온 글로벌 통화정책이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글로벌 유동성 축소 및 리스크 증대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회사들이 포트폴리오의 일대 조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서브프라임 사태나 유럽 재정위기 이후의 예에서처럼 시장 불안으로 나타난 공포가 전 세계적 경기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출구전략이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를 제 궤도에 되돌려 놓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근거에서다. 경기가 점차 나아진다는 전망을 바탕으로 비정상적 통화정책을 정상상태로 되돌리자는 것이라서 출구전략으로 인해 경기가 다시 부진에 빠진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이야기다.

버냉키의 발언 이후 1주일이 지나면서 각국의 주식과 채권 시장 급락세는 다소 진정되는 듯하지만 앞으로의 사태를 선뜻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5년간 글로벌 금융시장이 극도의 불안정을 겪은 만큼, 시장은 미국과 유럽에 가려져 있던 취약 부문으로 불똥이 튀면서 부작용이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금리상승 충격은 세계 각국 금융시장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아베노믹스는 이미 한계에 부딪히는 듯한 모습이다. 일본의 주가가 연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으며 안전자산 선호로 엔저 흐름도 100엔대 초반에서 막혀 있다. 경기호전과 물가상승 없는 금리상승으로 재정 리스크가 증폭될 수도 있다. 더욱이 세 번째 화살로 일컬어지는 중장기 발전전략에 대한 국제금융가의 반응은 냉담했다. 출구전략이 가시화되는 시기에 중국 자금시장도 얼어붙어 시중은행 간 거래금리인 상하이은행간금리(SHIBOR)가 10%대로 올라서기도 했다. 중국 금융당국은 불안 진정보다는 기왕의 긴축모드를 지속하는 가운데 그림자 금융에 대한 규제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업들의 빠듯한 자금사정이 이어지면서 중국 경제 성장세에 대한 기대 수준이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는 형편 이다.

유럽 상황도 다시금 급박하게 돌아갈 수 있다. 미국발 금리 상승으로 인해 남유럽 취약국의 금리가 다시 올라가는 상황에서 하반기 독일 총선을 맞이해 정치 리스크가 커질 공산이다.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극도의 경기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금리가 오르면 재정건전성 개선에 대한 믿음은 다시 추락할 것이다. 한편 터키와 인도,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몇몇 나라들처럼 금융계정을 통한 자본 유입으로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를 버텨온 일부 신흥국들이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도 있다. 1980년대 초반 중남미의 외채위기나 1990년대 중후반 아시아의 외환위기와 같은 신흥국의 연쇄적인 금융위기는 미국의 국채금리 상승과 이로 인한 달러 강세가 원인이었다.

한국 경제의 만성적인 취약 변수인 환율은 다소 오르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이다. 외환보유액 확충과 더불어 규제 도입의 성과가 다시 한 번 확인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금리 상승에 취약한 다른 부문도 분명히 존재한다. 가계부채와 관련해 고위험군 위험관리가 요구되고 있으며, 기업금융 쪽도 추가 부실화 위험이 높아 경우에 따라서는 유동성 공급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보다 큰 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금융시장 불안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동아시아 경제의 불안이 서로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다. 중국은 경기조절 기능의 제약을 받고 있으며, 일본은 쇠락을 재촉할 위험성이 높은 정책실험을 감행하고 있다. 버냉키 쇼크의 파장으로서 동아시아 경제에 불어닥칠 수 있는 더 큰 요동에 대한 대비태세가 충분한지를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이번엔 다르다, 우리는 괜찮다’만 되뇌다 또 한 번 글로벌 유동성의 급속한 역류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은 없는지, 추가적인 안정화 방안으로 무엇이 가능한지 대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myshin@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