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의 무상보육 예산 부족분을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문제를 놓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관련 부처 장관들이 격론을 벌였다.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다. 박 대통령은 격론을 지켜본 뒤 장관들 손을 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 주요 안건은 ‘2013년도 일반회계 예비비 지출안’으로 보건복지부가 지자체의 영유아 보육사업 지원용으로 확보한 일반 예산 6783억원 중 3607억원을 보육비 부족을 겪는 지자체에 우선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확약한 지자체에만 지원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날 안건이 보고되자 박 시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박 시장은 “서울시는 추경이 불가하고 오히려 감액 추경을 해야 할 상황”이라며 “지자체의 추경 편성을 조건으로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갑(중앙정부)의 을(지자체)에 대한 횡포”라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그러면서 “추경 편성을 전제로 하는 것은 추가 협의 때까지 보류하고 서울시 보육예산 부족분부터 먼저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박 시장은 새 정부 출범 후 국무회의에 매번 참석했지만, 서울시와 정부 간 보육예산 지원을 놓고 갈등이 전면화된 지난달 이후 두 번 연속 불참했다. 하지만 이날 관련 내용이 안건으로 잡히자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반론이 제기됐다. 김동연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이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김 실장은 “서울시 사정만 너무 생각하는 것 아니냐”며 “보류하라고 하면 예산을 지원받게 될 다른 지자체는 돈을 받아놓고 집행도 못하고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냐”고 따졌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김 실장은 그러면서 “이미 조건부 예산 지원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것이고 그 전에 지자체 단체장 대표들과도 얘기했던 것”이라며 “이제 와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한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섭섭하다”는 말도 했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안행부는 원래 지자체 입장을 두둔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이 문제는 다르다”며 “안행부도 이번 지원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예비비에서 2000억원을 떼줘야 한다. 서울시도 고통 분담에 동참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른 지자체들은 다 동의했는데 왜 서울시만 그러냐”며 “추경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돈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시장과 관련 부처 장관들 간에 몇 차례 더 고성이 오갔고, 코너에 몰린 박 시장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저는 할 말 다했다”며 말을 맺자 논쟁이 종료됐다고 여러 참석자가 전했다.

박 대통령은 박 시장과 장관들 간 설전이 벌어지는 동안 별다른 언급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논쟁이 끝나자 국무회의 의장 자격으로 안건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한 참석자는 “원안대로 통과시킨 것은 서울시의 무상보육 예산 지원 주장에 대통령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