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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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열 명이 천재 한 명보다 낫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얘기하다 보면 그만큼 나은 결론이 나오거든요. 장관 되고 나서 국회에 나가 욕도 많이 먹고, 여러 사람을 만나 저와 다른 의견들을 듣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각이 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사진)에게는 ‘합리적 공안통’이라는 수식어가 늘 뒤따라 다닌다. 사법연수원 13기 출신인 그는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기까지 거친 대형 공안 사건들을 도맡아오면서도 늘 주변 의견을 존중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을 보여왔다.

하지만 지난 3월11일 장관 취임 이후 적지 않은 굴곡을 겪었다. 김학의 차관 낙마,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수사와 관련한 외압 논란 등. 취임 100일을 갓 넘긴 지난 22일 황 장관을 삼계탕 전문점인 서울 반포동 영양센타반포점에서 만났다. 황 장관은 집에서 가까운 맛집이라고 이곳을 소개했다. “2004년 문을 막 열었을 때 와봤는데 그 뒤로 수시로 들러요. 집에서 걸어서 10분밖에 안 걸리고 맛도 좋거든요. 입맛이 좀 없다 싶으면 으레 여기서 영양 보충하죠.”

“법 질서는 경제 성장과 직결”


[한경과 맛있는 만남] 황교안 법무부 장관 "阿 후진국엔 해외투자 왜 적을까요…法질서가 곧 경제수준"
지하의 허름한 방에 자리를 잡은 황 장관은 간판 메뉴인 삼계탕과 전기구이치킨, 마늘치킨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점원이 ‘단골손님 특별서비스’라며 병 안에 인삼 한 뿌리가 담겨 있는 인삼주를 먼저 내왔다. 그는 “평소 술을 잘 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래도 한 잔은 해야지요”라며 잔을 돌렸다.

반주(飯酒)로 목을 축인 황 장관은 법 질서의 중요성으로 화두를 꺼냈다. “요즘 법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 질서야말로 경제 성장과 직결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경제가 발달하려면 물적·인적·기술 자본도 중요하지만 요즘엔 사회적 자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신뢰 같은 건데, 법 질서를 잘 지켜야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모여 사회적 자본이 되는 겁니다. 아프리카 국가에는 왜 해외 자본 투자가 적을까요. 낮은 신뢰도가 리스크로 작용하는 거죠. 법 질서 준수 수준이 경제 성장을 좌우한다는 얘기입니다.”

“경제 민주화는 시대의 요구”

법무부 장관으로 최근 과잉 입법·규제 논란을 빚고 있는 ‘경제민주화 입법’은 어떻게 생각할까. 법무부는 최근 기업의 이사·감사 자격을 강화하는 등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소액주주 의결권 강화를 위한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내놨다.

그는 ‘투명한 선진국형 사회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예전엔 기업은 ‘돈만 벌어오면 왕’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국민들도 돈을 어떻게 버느냐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정부가 이 세상에 없는 제도까지 들여오면서 경제민주화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원하니까 그에 필요한 규제를 도입해가고 있다고 봐야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기업의 속성을 너무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냐’고 묻자 그는 “어떤 제도든 갈등이 있게 마련”이라고 대답했다. “1990년 지방자치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도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며 걱정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지방은 분명 많이 발전했지요. 경제민주화 관련 법·규제도 지금은 불편한 옷으로 보이지만 잘 정착시키면 양적 측면은 물론 질적인 선진국으로 가는 데 큰 보탬이 될 겁니다.”

삼계탕을 반쯤 먹었을 때 전기구이치킨과 마늘치킨이 한 접시씩 나왔다.

“국정원 조사 결과는 검사들이 생각할 부분”

포만감이 느껴질 때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조심스레 꺼냈다. 황 장관은 수사 과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던 검찰 특별수사팀 측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등 ‘사실상 수사 지휘’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검사 생활 당시 지휘한 사건과 반대 결과여서 논란은 더 증폭됐다. 황 장관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2005년 ‘안기부 불법 도청’ 사건의 수사를 지휘해 불법 도청을 지시·묵인한 혐의로 임동원·신건 등 2명의 전직 국정원장을 구속한 바 있다.

황 장관은 외압 논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심각한 갈등이나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각자 스탠스(입장)를 취하면서도 조화를 이뤄가는 게 보통입니다. 이번 건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수사기간 중 (채동욱) 검찰총장하고 얼굴 마주한 게 현충일 행사 때 딱 한 번인데, 자꾸 장관하고 총장하고 갈등이 있다고 하니까 답답하더라고요. 수사 결과요? 물론 내가 장관으로 있을 때 일어난 사건이긴 하지만 결과는 수사한 검사들이 생각할 부분이겠지요. 다만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언론의 과당경쟁으로 인한 오보와 여전한 피의사실 공표 관행은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마을 전담 변호사로 법률 소외지대 없앨 것”

분위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화제를 바꿨다. 100여일 장관 생활 중 가장 뿌듯한 일은 뭐냐고 물었다. ‘무변촌 변호사 제도 도입’이라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변호사가 없는 마을에 ‘마을 전담변호사’를 둬 전화나 메일 등으로 주민들에게 기초적인 법률 상담 등을 지원하는 제도로, 법무부는 최근 1차 마을변호사 414명을 위촉해 246곳의 마을에 배정했다.

“도시에 살거나 여유 있는 사람들이야 어려울 때 얼마든지 변호사를 찾을 수 있지만, 많은 국민은 기본적인 법률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법률구조공단이 있는지도 몰라서 혼자 끙끙 앓는 분들도 많아요. 변호사들이 먼저 봉사하니까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때로는 그 인연이 사건 수임으로 연결도 되고. 결국 윈윈 아니겠어요?”

다양한 법률 서적을 집필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그는 검사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종교 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 ‘법률학사전’ ‘검사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나요’ ‘집시법 해설’ 등을 썼다. “최근 서울 대형교회 목사님이 법을 어겼다가 기소됐는데, 종교법을 몰라서 그랬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법을 몰라서 어기고, 그래서 고생하는 부분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책을 쓸 당시 관련 전문서적이 전무했던 종교법, 국가보안법, 집시법 분야를 정리했어요. 그게 법률가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풍류 즐긴 ‘범생이’

후식으로 수박 한 접시와 방울토마토가 나왔다. 황 장관의 젊은 시절이 궁금했다. 그는 “‘범생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날라리’ 기질도 있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금도 일을 하지 않을 땐 색소폰을 분다. 부산지검에 혼자 근무하던 시절 무료한 저녁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 재미가 붙어 2집 음반까지 냈다. 연말이면 작은 가게를 빌려 지인들과 ‘작은 음악회’를 연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톱 연주를 배워 당시 인기 라디오프로그램인 ‘서유석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도 출연했다.

“대학 가서도 기타 치고, 수업 빠지고 딴 책 읽고…. 외도도 참 많이 했죠. 연애는 한 번도 못하다가 연수원 다닐 때 형수가 소개해줘서 처음으로 여자를 만났어요. 2년 연애하고 바로 결혼했네요. 그런 걸 보면 범생이가 맞나요?(웃음)”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을 주문했다. 그는 2005년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소신 있게 처리하려다 후폭풍으로 승진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2011년 8월 부산고검장 사임 후 1년5개월여간 태평양 고문변호사로 이른바 ‘을’도 해봤다.

“돌이켜보면 위기는 늘 오히려 기회가 됐어요. 평생 선두 그룹에 있다 좌절을 해보니 자신을 되돌아볼 수도 있었고, 남들과 더 더불어 살아야겠다고 다짐도 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건배사 하나 하겠습니다. ‘위’기는 기회다, ‘하’면 된다, ‘여’러분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꿈을 갖고 이런 생각으로 살길 바랍니다. 위·하·여!”

김병일/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한경과 맛있는 만남] 황교안 법무부 장관 "阿 후진국엔 해외투자 왜 적을까요…法질서가 곧 경제수준"

■ 국내 황교안 장관의 단골집 영양센타 첫 닭요리 체인점…신성일·엄앵란도 즐겨 찾아

[한경과 맛있는 만남] 황교안 법무부 장관 "阿 후진국엔 해외투자 왜 적을까요…法질서가 곧 경제수준"
영양센타는 1960년 서울 명동에 처음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닭 요리 체인점이다. 외국에 나갔다가 전기로 닭을 굽는 것을 본 창업주 이도성 씨가 국내에 들여와 가게를 열었다. 우리나라엔 생소했던 바삭한 닭 껍질과 담백한 속살의 ‘통닭’ 요리는 금세 입소문을 탔다. 당시 톱스타였던 신성일, 엄앵란 씨 등이 즐겨 찾는 맛집으로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현재는 서울 방배·여의도·모래내·신촌, 분당 등에 분점을 두고 있다.

2004년 문을 연 반포점(02-532-9292)은 삼계탕 맛이 좋은 곳으로 꼽힌다. 부글부글 끓는 육수에 닭 한 마리를 넣어 푹 끓인 뚝배기를 놋쟁반에 올려 낸다. 영양삼계탕(1만3500원)이 기본 메뉴로, 깍두기와 새콤한 무절임이 함께 나온다. 들깨를 넣은 들깨삼계탕(1만5500원)과 산삼뿌리를 통째로 넣은 산삼삼계탕(1만8500원) 등도 있다. 삼계탕 외에는 전기로 구운 통닭(1만3000~1만4500원)을 비롯해 데리야키 소스와 마늘로 간을 한 마늘치킨(1만9500원), 매운닭·누룽지탕 세트(1만~1만9000원) 등을 판다. 서초동 법원 후문에서 고속터미널 방향으로 쭉 내려가면 삼호 가든아파트 건너편 길가에 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