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훈 회장 "경제민주화 한다고 노조 주장만 반영…이대로면 기업들 美로 中으로 다 떠나"
“기업 활동을 하면서 생긴 모든 일을 총수 개인에게만 엄중하게 적용해 심판하는 게 사회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까?”

배순훈 S&T중공업 회장(70·사진)이 27일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3 KERI(한국경제연구원) 포럼’에서다. 배 회장은 1990년대 대우전자 사장 시절 ‘탱크주의’ 광고에 직접 출연해 유명세를 탔던 인물로 김대중 정부 때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다. 지난 3월 S&T중공업 회장으로 영입됐다.

배 회장은 이날 ‘창조경제를 위한 기업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창조경제의 핵심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며 “수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기업인에게 법의 잣대를 엄격하게만 들이대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또 “정부는 오너를 구속하는 것으로 정의를 달성했다고 여길 게 아니라 기업활동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CJ 비자금 사태에 대해선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총수가 회사 말단에서 발생하는 일까지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다”며 “최고 책임자 개인의 문제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는 까다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배 회장은 자신도 대우전자에 몸담았던 시절 대표이사 사장 자격으로 보증을 서 수백억원대의 빚을 떠안은 신용불량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 보증을 서지 않았다면 기업 활동 자체가 불가능했고 사장도 관둬야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 회장은 “정부의 역할은 경쟁의 규칙을 만드는 것에 국한돼야 한다”며 “경제민주화는 정책의 방향을 바로 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뒤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정책이 일으킨 혼선의 예로 정부의 ‘고용률 70% 달성 정책’을 들었다. 그는 “정부 정책이 발표된 뒤 KT는 3조원을 들여 2만5000개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고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 고덕단지에 100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3만개를 만든다고 했다”며 “정부 말대로 일자리 30만개를 만들려면 30조~1000조원이 필요한데 이는 말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차라리 이 재원으로 어려움에 빠진 기업을 지원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배 회장은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로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을 꼽았다. 그는 “정치적 리스크를 피하려고 노조 측 주장만 반영해선 안된다”며 “이대로라면 현대차는 미국으로, 삼성전자는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다 옮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배 회장은 “창조경제를 달성하려면 노·사·정 간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고 외환위기 이후 사라진 한국인만의 다이내믹함을 되살려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 공동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창조경제의 아이콘으로 한국에 초대됐지만 그가 한국에 있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한국적인 인재를 육성하고 기업을 더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