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괴물 키우는 주범이라고?
한 상위권 여학생이 급우들에게 집단 성추행을 당한 뒤 후유증으로 성적이 떨어진다. 가해자들은 우등생 부잣집 아이들이 결성한 비밀 스터디그룹 멤버.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경쟁자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그룹의 리더 유진(성준 분)은 신참 준(이다윗)에게 1등이 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성적이 더 좋은 애들을 모두 죽이는 거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다음달 11일 개봉하는 신수원 감독의 영화 ‘명왕성’(사진)은 아이들을 끔찍한 괴물로 만들어버린 잔혹한 교육 현실을 고발한다. 여태껏 입시지옥을 다룬 한국 영화 중 가장 황폐한 모습이다. 잘못된 교육체제에서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조차 없는 학생들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빈부 격차에 따른 계급의식도 선명하다. 상위권에는 서울 대치동에서 고액 과외를 받는 부유층 학생들이 포진한다. 가난한 주인공 준이 대치동 학원 강사에게 월 수강료로 100만원을 줬다가 이 금액은 한 번의 상담료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망신을 당하는 모습은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명문 사립고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유진이 학교 뒷산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현장에 떨어진 휴대폰과 다른 학생들의 증언으로 유진의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준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준은 자신을 용의자로 몰아세운 비밀 스터디 그룹의 멤버들을 찾아가 그들의 추악한 행각들을 하나씩 폭로한다.

미스터리 형식은 긴장감을 강화시킨다. 사회비판적인 묵직한 주제는 울림이 크다. 시험성적 순위를 대자보에 붙여놓고 수업과 공부에 방해된다며 범죄마저 은폐하는 학교야말로 괴물을 키우는 주범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이런 교육시스템의 피해자다. 학생들은 과학실 실험 보조를 지원하지 않다가 선생님의 “가산점 줄 게” 한마디에 손을 번쩍 든다. 시험이 끝날 때마다 문제에 오류가 있다며 달려드는 모습은 살벌하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순수성은 없고, 오로지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청소년의 성장영화가 아니라 파괴영화가 된 것은 씁쓸하다. 교사 출신인 신 감독의 경험이 잘 녹아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