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노래·마임…카르멘이 기가 막혀
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흥미로웠다. 무대 앞쪽 아래 구석에는 피아노와 첼로와 키보드, 뒤편 옆쪽엔 더블베이스와 봉고가 놓였다. 무대에는 탁자 몇 개가 놓여 있다. 카페 종업원 차림의 배우들이 빗자루를 들고 무대에서 부산히 움직인다. 개점을 앞둔 라이브 음악 카페 분위기다. 무대 아래서 악기를 조율하던 세 명의 연주자가 무대의 테이블 의자에 앉더니 종업원들과 함께 “아이 러브 커피, 아이 러브 티”로 시작하는 노래를 아카펠라로 부른다.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 중인 음악극 ‘카르멘’은 아카펠라에 이어 카페 주인이 책 한권을 들고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주인의 손에 들린 책은 1845년에 발표된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카르멘’. 조르주 비제의 동명 오페라로 잘 알려진 소설이다. 공연은 카페 주인이 손님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종업원들이 소설 속 등장인물을 나눠 맡아 극으로 보여주는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된다. 카페 주인도 소설 속 화자인 조바니 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소설 속 이야기는 다양한 무대 예술로 펼쳐진다. 대사 위주의 연극을 중심으로 밀도 있는 신체 움직임으로 드라마를 보여주는 신체극, 마임, 악기 연주, 노래, 무용, 가면극이 융합된다. 배우들은 춤과 노래, 연기뿐 아니라 악기도 직접 연주한다. 3인조 밴드의 연주 모습도 관객 앞에 노출된다. 첼로가 어떤 배경음을 내는지, 키보드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생생하게 전달된다.

언뜻 산만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각 예술 장르는 서로 짜임새 있게 조화를 이루며 카르멘과 돈 호세의 사랑 이야기를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들려준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요소들이 섞이지만 난해하지 않다. 오히려 두 남녀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깊이 있게 표현해낸다. 오페라 뮤지컬 영화 등 어떤 장르의 ‘카르멘’보다 매혹적이고 강렬하다.

제작 측이 내세운 ‘음악극’이란 말로 이 공연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음악의 역할이 크기는 하지만 배우들의 몸짓과 퍼포먼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만만치 않다. ‘날 것 그대로’의 음악과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큰 매력이다. 악기 연주는 물론 배우들의 노래가 마이크와 스피커, 첨단 음향 기기의 미세한 조정 등 기계 힘을 빌리지 않고 객석 구석구석까지 퍼진다. 2010년 초연부터 조바니 역을 맡은 박준석을 비롯해 황연비 정상윤 신상환 임환덕 양성훈 허란 김현경 등 극단 ‘벼랑끝날다’ 소속 배우들이 좋은 연기와 퍼포먼스를 펼친다. 공연은 내달 21일까지, 4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