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외국학자 놀이터 된 한국
존 호킨스의 ‘창조경제론(The Creative Economy)’이라는 책은 2001년에 나왔다. 당시 논의되던 영국의 창조경제가 그후 어떻게 됐는지는 접어두자. 현재 중국 상하이에서 일한다는 호킨스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창조포럼에서 그는 “한국 정부가 방향을 잘 설정했다”고 평가했다. “한국형 창조경제를 만들라”는 충고도 했다.

호킨스가 내뱉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여기저기서 인용되고 있다. 마치 한국에서 ‘창조경제의 아버지’로 등극한 분위기다. 호킨스 자신도 무척이나 놀랐지 싶다. 그가 한국을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호킨스가 한 말 중 우리가 전혀 모르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거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주최 세미나에 초청된 이스라엘의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 그룹 회장도 한국의 창조경제로 바빠진 인물이다. 국회가 연초부터 불러댄 그는 이제 한국을 옆집처럼 들락날락한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요즈마 펀드와 다른 새로운 얘기는 전혀 없다.

'봉'으로 전락한 국내 지식시장

지금 연구소마다 요즈마 펀드 관계자를 서로 초청하겠다고 난리다. 한쪽에서 1만달러를 제시하면, 다른 쪽에서는 2만~3만달러를 주겠다는 식이다. 상종가에 놀란 요즈마 펀드는 즉각 한국에 지사를 냈다. 장관들이 만나달라고 줄을 서니 아예 한국에다 판을 깔았다.

이참에 창조경제로 갈아타는 외국학자도 적지 않다. 제롬 글렌은 미국의 미래학자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그를 초청했다. 이번에는 ‘창조경제와 정보기술(IT)의 미래’다.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성장’에 맞장구쳤던 인물이다.

한국이 외국 미래학자들의 ‘봉’이 된 지 오래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한국의 성장동력 열 가지(‘기업가 정신을 고취시켜라’ 등 누구나 아는 뻔한 얘기들)를 제시했다. 그 대가로 수만달러를 챙겼다는 소문이다.

외국학자들이 한국 초청 시 가이드라인을 공유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비용을 좀 깎을라 치면 당장 자신이 커뮤니티에서 곤란해진다는 답변이 돌아올 때가 왕왕 있다. 요구하는 대로 해 줘도 성의 있는 발표를 하는 외국학자는 또 드물다. 적당히 짜깁기한 자료이기 십상이다. 초청하는 쪽의 정체성을 알고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해 주는 영악한, 아니 한국을 너무나 잘 아는 외국학자도 급속도로 늘었다. 정기적으로 자신을 초청할 만한 곳에 먼저 입질하는 ‘꾼’들까지 나올 정도다.


연구소인지, 홍보대행사인지

국제 컨설팅 업계에서도 한국 시장은 ‘식은 죽 먹기’로 통한다. 돈은 돈대로 받고 원하는 결과만 내주면 그만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국제 컨설팅 기업이 다가와 달콤하게 속삭이는 이유다. 이들도 벌써 창조경제로 바꿔 탔다.

앞으로 정부 연구소마다 창조경제 국제 콘퍼런스가 얼마나 더 열릴지 모른다. 대기하고 있는 것만 수십 개라는 얘기도 있다. 주무부처가 원해서라지만 이건 연구소가 아니라 홍보대행사나 다름없다. 부처와 연구소들이 워낙 설쳐대니 민간단체마저 눈치를 볼 지경이다. 열리는 콘퍼런스마다 모조리 창조경제다.

외국인을 불러대는 걸로는 성에 안 차는지 해외방문도 줄을 잇는다. 노무현 정부 때는 스웨덴 핀란드로, 이명박 정부 때는 독일로 각각 몰려갔다. 지금은 이스라엘행 비행기에 불이 났다. 정권마다 본받겠다는 나라, 외국기관들이 뭐가 그리도 많은지….

한국은 지금 외국학자 놀이터가 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수지맞는 놀이터다. 창조경제를 하겠다는 21세기 한국에서 외국학자의 입만 쳐다보는,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풍경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