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실은행 문제 논의하는 독일 >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2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부 장관과 베를린 하원 의사당에서 대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베를린AP연합뉴스
< 부실은행 문제 논의하는 독일 >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2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부 장관과 베를린 하원 의사당에서 대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베를린AP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은행을 구조조정할 때 채권자와 주주는 물론 10만유로 이상의 예금자에게도 손실을 부담시키기로 원칙을 정했다. 손실 부담을 우려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U 재무장관들은 26일(현지시간) 저녁부터 27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마라톤 회의 끝에 이 같은 원칙에 합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은행을 구조조정할 때 채권자와 주주들에게 우선적으로 손실을 부담시킨다. 필요할 경우 10만유로 이상 예금자도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다만 10만유로 이상 예금자 중에서도 개인이나 중소기업은 가능한 한 손실 부담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또 각국은 일정한 재량권을 갖고 꼭 보호해야 하는 채권자나 주주, 예금자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그들을 보호할 수 있다. 은행이 이 원칙을 따르면 5000억유로 규모의 유로안정화기구(ESM)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합의안은 EU 의회를 통과해야 법적 효력을 갖는다. 최소 연말은 돼야 의회의 비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U는 내년부터 역내 은행들을 실사해 부실은행을 가려낸 뒤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예정이다.

부실은행은 유럽 재정위기의 주범으로 꼽혀왔다. 은행부실→정부자금 투입→정부재정 악화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돼 왔기 때문이다. 이 사슬을 끊기 위한 아이디어가 ‘은행연합’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역내 은행을 통합 관리해 개별 은행의 부실을 막자는 취지다. 은행연합을 위한 사전조치가 부실은행 정리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구제에만 1조6000억유로의 세금이 투입됐다.

예룬 데이셀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EU가 납세자를 보호하고 부실은행과 국가 간의 악순환을 끊는 중요한 첫걸음을 뗐다”고 평가했다.

예금자 손실 부담은 지난 3월 키프로스 은행들을 구조조정할 때 처음 시행됐다. 키프로스에서는 손실을 피하기 위해 대형 자본이 대거 자금을 인출해 경제가 크게 흔들렸다. 이번에 합의한 안은 개인이나 중소기업 예금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뒀다는 점에서 키프로스 은행 구조조정 때보다는 완화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여전히 손실을 우려한 예금자들이 돈을 뺄 가능성은 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안 그래도 상황이 어려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재정위기국의 은행은 추가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하반기 유럽 경제에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