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가 틀렸나…美 경기 예상밖 부진
지난 1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고용과 소비, 기업 투자가 늘어나고 주택 시장은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지난 19일 양적완화 정책의 출구전략 로드맵을 제시했던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사진)의 경기 진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Fed가 출구전략 시행 시기를 늦출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26일 미국 증시는 상승세로 출발했다.

미국 상무부는 1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시장 전망치(2.4%)를 크게 밑도는 1.8%로 최종 확정됐다고 이날 발표했다. 버냉키 의장의 진단과 달리 소비, 투자, 수출 등 대부분 분야에서 경기가 예상보다 부진했던 탓으로 분석된다. 상무부는 지난 4월 말 잠정치(2.5% 증가)에 이어 지난달 말 수정치(2.4%)를 발표했지만 최종 확정치에서 예상을 크게 벗어난 결과를 내놓았다. 미국은 분기별 GDP 증가율을 잠정치 수정치 확정치 등 세 차례로 나눠 발표한다.

1분기 GDP 증가율 확정치가 잠정치나 수정치에 비해 하향 조정된 것은 개인 소비지출이 당초 예상보다 조금밖에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비는 미국 경제활동의 70%를 차지한다. 1분기 개인 소비지출은 2.6% 늘어나는 데 그쳐 잠정치였던 3.4%보다 0.8%포인트나 줄었다.

소비 경기가 불투명해지자 기업들도 투자를 줄였다. 1분기 기업 고정투자 지출은 잠정치인 2.2% 증가에서 0.4% 증가로 대폭 낮아졌다. 그나마 주택 시장이 견조한 회복세를 이어가면서 GDP 증가율을 떠받쳤다. 주택 건설·수리 등을 포함한 주거용 투자는 14% 늘어나 잠정치(12.1% 증가)를 웃돌았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 자동삭감(시퀘스터) 후폭풍도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1분기 연방정부 지출이 전년 동기 대비 8.7%나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퀘스터는 2분기 GDP 증가율에 더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Fed도 지난 1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공식 성명서에서 “재정정책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굉장히 강한 역풍(재정 긴축)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느리게나마 전진하고 있다는 것은 경제의 각 분야가 개선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의 관심은 버냉키 의장이 1분기 GDP 증가율 확정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쏠리고 있다. 자산운용사인 보스턴어드바이저의 제임스 골 포트폴리오매니저는 “시장은 일단 약한 경제지표를 선호한다”며 “그래야 Fed가 출구전략의 속도를 늦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이정선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