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 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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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개인권리 가장 잘 보장해…최소 국가가 미덕"
20세기 들어 집단주의가 번져가면서 지구촌의 자유는 점차 위축돼 갔다. 독일 이탈리아 등 서방 국가에서도 러시아 스탈린식 폭정이 지배했다. 상당수 지식인은 폭군의 죄를 눈감아주거나 정당화하기까지 했다. 자유의 마지막 희망처럼 보였던 미국과 영국마저도 점차 집단주의 흐름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유를 외치며 인류를 구원하는 길은 ‘최소 국가’라고 주장한 인물이 미국 여류소설가이자 사회 철학자인 에인 랜드(Ayn Rand)였다. 최소국가란 폭력 사기 기만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계약을 집행하는 과제만을 수행하는 일종의 자유방임 국가다. 이런 국가만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랜드가 자유주의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은 그가 태어나 성장한 러시아에서의 체험 때문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약국을 경영해 생활이 넉넉한 편이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약국은 국유화됐고, 가족은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어려서부터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대학에 진학해 역사와 철학을 전공했지만 공산주의 박해로 꿈을 이루기 어려워지자 그는 홀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자본주의는 개인권리 가장 잘 보장해…최소 국가가 미덕"
작가적 재주를 타고난 랜드는 자유주의 사회철학을 개발, 이를 소설과 논문 등의 형태로 발표했다. 그의 사상 핵심은 권리이론인데 이는 인간본성에서 도출한 것이다.

본래 인간은 지적 능력으로 자기 삶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랜드는 설명한다. 이기심이 덕성의 본질이고 나를 위해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반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주의는 죽음의 철학이며 부도덕하다고 주장한다.

랜드는 인간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게 권리라고 강조했다. 이 권리는 두 가지다. 첫째 자기소유권이다. 누구나 자신의 신체와 지적 능력을 소유할 권리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그런 자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도 있다.

둘째는 재산권인데 이는 타인과의 자발적 교환과 생산 활동을 통해 재산을 습득할 권리다. 이런 권리는 개인이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에서 나온다. 재산권은 자유롭고 문명화된 합리적 사회의 징표라는 게 랜드의 주장이다. 권리란 누구나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이유에서다. 누구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의무가 있기에 권리는 인간을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도 들어 있다.

이런 권리이론에 기초한 랜드의 자본주의 옹호론도 흥미롭다. 자본주의가 소중한 이유는 경제적 번영만이 아니라 인성에서 도출된 자유, 재산, 생명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진지하게 존중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랜드는 시장사회는 모든 사람을 자유롭고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는 사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호혜적 기회를 이용할 수 있는 체제가 자본주의라고 본다. 인간들은 독립적 판단과 노동의 결실을 통해 스스로 경제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고 그래서 자본주의에서만이 노동의 즐거움과 자부심,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가는 세상을 떠받치는 영웅이라는 랜드의 주장도 주목할 만하다. 관개시설 제약 의료기 등을 발명하고 수백만 가지의 혁신으로 공포, 유행병, 기근에서 인간을 구출하고 소득 증대 일자리 창출 등 풍요의 세상을 만든 게 기업가라고 지적한다. 원인이 정부의 개입에 있음에도 문제나 위기가 있을 때마다 기업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규제 늘리기와 증세 등 통제를 강화하는 건 최악의 불의이고, 기업에 대한 비난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핵심을 공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는다.

어떻게 해서든 돈벌이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가 시장이 아니라 부의 창출을 통해 돈을 버는 세상이 시장이라는 랜드의 인식도 탁월하다. 이윤 동기는 생산적 성취를 통해 돈을 버는 욕구라고 본다. 삶을 개선하고 즐겁게 만드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게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자유시장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거나 비생산적인 사람들을 밀어낸다.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들만 살아남는다.

흥미로운 것은 랜드의 국가관이다. 무정부주의는 순진한 생각이라는 게 그의 인식이다. 조직화된 정부가 없으면 필연적으로 범죄자가 등장한다는 이유에서다. 국가에는 국방, 경찰업무, 분쟁해결을 위한 법률서비스 등 권리를 보호하는 과제 그 이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은정부라고 해도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에 큰 정부로 변신할 위험성이 상존한다. 랜드의 사상에는 그런 위험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와 헌법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 없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역사에서 이타심은 정치권력과 폭정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다는 이유로 이타심 그 자체가 부도덕하다는 랜드의 인식도 비판 대상이다. 강제적 이타주의는 분명히 부도덕하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타인을 돌봐주는 게 내 행복의 침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족 친지 등 소규모 사회는 자발적 이타심을 기초로 하고 있고 사회의 안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다.

일부 비판의 여지가 있음에도 랜드는 권리이론의 새로운 철학적 기초에서 자유주의를 개발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자본주의는 개인권리 가장 잘 보장해…최소 국가가 미덕"

랜드 사상의 힘 - 소설 마천루·아틀라스 전 세계 2500만부 팔려…앨런 그린스펀도 랜드의 팬

랜드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완전히 다른 자유주의 사상을 확립했다. 인간의 인지에 대해 고전적 자유주의가 주관주의를 전제한 반면 랜드는 객관주의에 기초했다. 그는 인간이 합리적 역량으로 윤리 코드를 인위적으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고전적 자유주의는 그런 역량에 대해 비관적이고 윤리 코드의 진화를 신봉한다.

랜드의 사상은 20세기 중반 집단주의에 대한 반대여론을 조성해 세력 확대를 막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의료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의료복지의 사회화에 주목했다. 이런 강요된 희생의 예로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독일 의사들의 보수를 들었다. 랜드는 의사들의 두뇌 유출 또는 진료시간 단축이라는 형태로 그들이 파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고는 적중했다. 의료복지의 확대는 인력 유출은 물론이요 의료의 비효율성으로 환자의 해외 유출로까지 이어졌다.

랜드는 복지국가의 부도덕성을 밝혀 복지국가에 대한 반대여론 조성에도 큰 기여를 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살아가는 게 부도덕하고 타인의 노력을 통해 사는 게 도덕적이라는 복지국가의 고질적 모순을 지적했다. 복지국가의 이타주의는 사랑이 아니라 인간 증오라고 꼬집기도 했다.

랜드 사상의 힘이 얼마나 컸던가는 그의 사상적 대중보급판인 소설 ‘마천루’와 그의 철학 전체를 집대성한 소설 ‘아틀라스’가 입증한다. 이기적인 창조자가 만들어낸 혁신과 기술개발이 이타적 인간들의 희생정신보다 인류의 구원에 훨씬 더 큰 기여를 한다는 내용의 ‘마천루’는 세계에서 2500만부 이상 팔렸다. 지금도 매년 30만부 이상 판매되고 있을 정도다.

전체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기업가, 기술자 등 각 분야 리더들이 사회를 등지고 개인의 창조력과 자발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아틀라스라는 신도시로 이동해 활동하는 내용을 그린 ‘아틀라스’는 미국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가운데 성경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인의 자유주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온 책이라는 평가다.

탈규제와 감세정책으로 경제를 구출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18년간 미국 중앙은행장으로 재임했던 앨런 그린스펀이 랜드의 팬이었다는 것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