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증은 음식 섭취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서 먹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정신적 질환이다. 반드시 치료받아야 하며 일상적인 식사조절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폭식증은 음식 섭취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서 먹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정신적 질환이다. 반드시 치료받아야 하며 일상적인 식사조절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여대생 한모씨(21·수원 영통구)는 얼마 전 밤에 피자 한 판, 아이스크림 2개, 오렌지주스 2통을 서둘러 먹다가 음식물을 토했다. 한씨의 부모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평소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며 다이어트에 열심이던 딸이 늦은 밤 숨어 폭식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한씨는 부모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신경성폭식증 진단이 나왔다. 한씨는 “계절별로 다이어트 강도가 다른데, 여름철이 다가오니까 다이어트를 심하게 할 수밖에 없다”며 “올해는 날씨 변화가 심해서 그런지 몸도 처지고 음식 조절이 힘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한번 먹으면 계속 먹게 되는 것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우울증 등 기분장애 동반

신용욱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폭식증에 걸리는 기전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환자가 우울감 해결, 다이어트 뒤 반작용으로 음식에 탐닉하다 병적인 상태로 폭식증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른바 다이어트 후유증으로 인한 섭식장애다.

섭식장애는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과 폭식증(신경성 대식증)으로 나뉘는데, 남녀 환자 비율이나 증상이 약간 다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섭식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2008년 1만940명에서 지난해 1만3002명으로 5년 새 18.8% 증가했다. 지난해 여성 환자는 1만379명으로 남성(2623명)보다 4배가량 많았다.

'굶기를 밥먹듯' 삐쩍 마른 그녀…남몰래 폭식하고 토하고…
거식증은 평소 살찌는 것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심한 젊은층에서 많이 나타난다. 비만이 아닌데도 비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사를 제한하거나 먹고 나서 인위적으로 토하는 등의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면 십중팔구 거식증이다.

폭식증은 음식에 대한 자제력을 잃게 되는 상태다. 단순한 일시적 과식이나 식탐과는 다르다. 폭식 후에는 구토와 설사를 반복한다.

박혜순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무조건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폭식증은 아니다”며 “미국 정신의학회는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사람이 먹는 양보다 현저히 많은 양을 평균 1주일에 2회 이상 먹을 때 폭식증으로 진단한다”고 설명했다.

폭식증 환자는 우울증이나 강박증 등 기분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최수희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연히 음식을 배불리 먹고서 기분이 좋아진 경험이 머릿속에 잠재해 있다가 나중에 우울한 상태가 되면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때에는 포만감을 느끼는 뇌 반응이 떨어져 있어 음식 섭취에 대한 통제가 안된다.

◆신경성폭식증, 마른 사람도 많이 걸려

폭식증은 일반적인 ‘과식’과 먹는 양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일반인은 과식을 해도 배가 너무 부르면 먹는 것을 중단하지만, 폭식증 환자는 눈에 보이는 음식이 없어질 때까지 먹는다. 이른바 음식을 먹어치우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폭식증은 대식증과 신경성폭식증으로 나뉜다.

조민영 서울365mc 위밴드병원 원장은 “대식증 환자는 폭식한 뒤 후회만 할 뿐 칼로리 소비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비만이 많다”며 “반면 신경성폭식증 환자는 입에 손을 넣고 구토를 하거나 설사약 이뇨제 등을 먹어 배설하려 하기 때문에 정상 체중이거나 마른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대식증 환자는 본인이 대식증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으며 남녀 비율은 1 대 1.5 정도 된다”며 “신경성폭식증은 다이어트를 하다 강박증이 생겨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성 비율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신경성폭식증 여성은 생리가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 식사량 조절 힘들어

일단 폭식증에 걸리면 스스로 먹는 것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정신건강 치료를 받아야 한다. 대식증은 대부분 걷잡을 수 없는 고도비만 때문에 비만클리닉을 찾았다가 발견된다.

신경성폭식증은 억지로 토하는 모습을 남에게 들키거나, 먹은 음식을 모두 토해내는 바람에 영양실조에 빠져 병원에 갔다가 발견된다. 병원에서는 식사일기를 통해 식사량을 체크하고, 배가 고플 때만 먹는 훈련을 실시한다. 집에서는 음식 보관 장소에 환자가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혼자 식사하게 되면 먹는 양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 기분장애를 없애기 위해 항우울제 처방을 하기도 한다. 식욕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므로 식욕억제제는 처방하지 않는다.

박 교수는 “식구 중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비만이 되거나 먹고 토하는 것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있으면 폭식증 가능성이 있으므로 진찰받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신용욱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민영 서울365mc 위밴드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