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련중인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에 신용등급 ‘A’ 이하인 기업의 회사채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인수해주는 내용이 포함된다. ‘BBB급’ 이하 6개 기업의 회사채만 인수했던 2001년과 달리 이번에는 대상 기업 수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28일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주 발표할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에 이 같은 회사채 신속인수제 실시 내용을 포함할 예정이다.

정부는 다만 과거처럼 ‘회사채 신속인수제’라는 표현은 쓰지 않기로 했다. 특정 기업을 지원하는 것으로 해석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 인수 대상은 크게 확대하기로 했다. 2001년 도입된 회사채 신속인수제에서는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 6개 업체의 2조9764억원어치 회사채를 인수했다. 이번에는 희망 기업의 신청을 받아 많은 기업이 혜택을 보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신용등급 A 이하 기업으로 대상을 넓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A등급 이하 회사채 중 하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은 10조3000억원어치에 이른다. 이 중 4조7000억원어치가 건설 해운 조선 등 취약업종 회사채다.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는 “시장 안정화가 아니라 정상화에 방점을 찍은 것은 중간 정도 위험을 가진 다수 중견 그룹들의 회사채 차환을 돕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재원조달이다. 금융위는 기재부와 한은의 협조를 희망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이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발행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도록 한은이나 기재부가 6000억원 안팎의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놓고 있다. 신보가 6000억원을 수혈받으면 10배인 6조원어치의 회사채에 보증을 설 수 있다. 이를 포함하면 산업은행 등이 인수할 수 있는 회사채 규모는 최대 1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기재부와 한은은 쉽사리 돈을 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기재부가 돈을 내면 우리도 보태겠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세수도 모자라는데 올 예산에 더 이상 반영할 여지가 없다”며 난색을 보였다.

■ 회사채신속인수제도

특정 기업의 회사채 만기가 집중적으로 도래할 경우 회사채의 80%를 산업은행이 신속히 인수해주는 제도. 나머지 20%는 회사가 상환해야 한다.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해 부도 위기에 몰리는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2001년 처음 선보였다.

이상은/박신영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