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7번방은 차가운 공공재에 판타지 입힌 영화적 상상력
성인이지만 6세 아이의 지능을 가진 지적장애인 용구(류승룡 분)는 자신의 하나뿐인 딸 예승(갈소원 분)에게 노란 ‘세일러문’ 가방을 선물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산다. 마트 주차요원으로 일하는 그의 한 달 월급은 고작 63만8800원. 그래도 용구는 차곡차곡 돈을 모은다. 마침내 가방을 사러 가던 날, 용구는 뜻밖에도 여아 유괴 및 성추행 살해에 대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힌다.

1200만 관객을 울린 영화 ‘7번방의 선물’(감독 이환경)은 성남교도소 7번방에 수감된 용구와 같은 방 죄수 5명이 교도소 밖에 홀로 남게 된 예승이를 몰래 교도소 안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교도소 내 등장인물들은 처음에 흉악한 범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용구를 배척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착한 그의 심성에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나아가 예승이가 교도소 안에 몰래 들어와 아빠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용구는 끝내 사형 집행을 피하지 못한다. 용구가 사형장으로 떠나는 날은 공교롭게도 예승이의 생일. “아빠 저를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며 큰절을 올리는 예승이의 마지막 작별인사는 수많은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다.

영화 속 7번방은 ‘허구’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7번방은 차가운 공공재에 판타지 입힌 영화적 상상력
‘7번방의 선물’이 이처럼 감성코드를 자극한 배경에는 다소 미화된 교도소의 풍경도 한몫했다. 영화 속에 그려진 교도소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온화하다. 특히 7번방은 파스텔톤 색상으로 연출돼 마치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방은 볕도 잘 들고 6명을 수용해도 넉넉할 정도로 넓다.

이런 모습은 실제 교도소와는 차이가 있다. 2010년 9월 기준으로 전국 50개 교정시설의 수용정원은 4만5930명. 하지만 하루 평균 수용인원은 4만8512명으로 만성적으로 정원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6.6㎡ 남짓한 좁은 방에서 6~7명이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 죄수들의 교화율도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용구와 7번방에 함께 수감됐던 나머지 5명은 출소 이후 착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화율 100%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출소자 가운데 23% 정도가 다시 교도소에 수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직폭력배나 절도범의 경우 재범률은 40%대에 달한다. 교도소 내 죄수 혹은 교도관들이 서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지내는 것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공공재인 교도소의 한계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7번방은 차가운 공공재에 판타지 입힌 영화적 상상력
교도소는 징벌과 교화의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 공공재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 교정서비스의 질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공공재 본연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공공재는 경합성도 없고 배제성도 없는 재화다. 경합성은 누군가 어떤 재화를 이용할 경우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데 제한을 받는 것을 말한다. 배제성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해당 재화를 이용할 수 없음을 뜻한다.

교도소는 국민에게 ‘치안’이라는 서비스 재화를 공급하는 시설이다. 치안은 내가 혜택을 봤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즉 경합성이 없다. 또 내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해서 치안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배제성이 없는 재화인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재화는 기업 등 민간에서 운영할 유인이 없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교도소를 세웠다고 가정하자. 이 교도소 운영을 위해 기꺼이 돈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민간이 투자를 하지 못한다면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 경로로 대부분의 공공재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

정부는 세금을 국방, 교도소, 경찰, 도로 등 다양한 공공분야에 적절하게 배분해야 한다. 재원 배분에는 여론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교도소에 많은 돈을 투입할

경우 “왜 죄수들에게 세금을 낭비해야 하느냐”는 반대 여론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도소에 대한 투자가 지나치게 부족할 경우 재범률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국선변호사는 왜 용구를 돌보지 않았나

영화에 등장하는 국선변호인도 일종의 공공재다. 7번방의 선물에서 국선변호사가 용구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는 이유는 관료화된 변호체계의 속성 탓이다. 국선변호사는 민간 로펌 소속의 변호사와 달리 재판에서 이겨야 할 유인이 강하지 않다. 로펌 변호사의 경우 승소시 의뢰인으로부터 성공수당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와의 연봉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있다. 하지만 국선변호사에게는 월급 외에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용구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교도소 보안과장(정진영 분)은 재소자들의 탄원서를 국선변호사에게 제출하지만 이 변호사는 “이런 것 별로 도움이 안 된다”며 차갑게 돌아선다.

영화 속에서 용구가 무죄인데도 국선변호사가 본연의 임무를 외면하는 것은 이른바 ‘정부의 실패’다. 공공재가 이런 비효율을 야기하는 이유로는 △제한된 정보와 지식 △정치적 제약 △관료조직의 문제 △민간부문 반응의 통제 불가능성 등을 들 수 있다. 정부는 정보의 제약 때문에 어떤 정책을 실시할 때 완벽한 결과를 예견하기가 힘들다. 또 최근 밀양송전탑 사태처럼 섣불리 정치적으로 타협을 모색하거나 관료들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경우 공공재의 효용은 반감할 수 있다.

파레토 효율로 본 공공재 생산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7번방은 차가운 공공재에 판타지 입힌 영화적 상상력
정부의 공공재 생산은 이른바 ‘파레토 효율(Pareto efficiency)’로도 설명할 수 있다. 제한된 예산으로 공공재 생산 비율, 다시 말해 자원 배분을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예를 들어 어떤 경제에 쌀 100㎏과 옷 20벌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김씨와 이씨는 이를 공평하게 쌀 50㎏과 옷 10벌씩으로 각각 나눠 가진다. 얼핏 보면 이것은 최적의 배분 상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김씨는 먹는 것보다 멋 부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내심 쌀보다 더 많은 옷을 가지길 원한다. 반면 이씨는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결국 두 사람의 배분 상태는 최적이라 할 수 없다. 이들은 결국 최적의 배분 방법을 다시 논의하게 된다. 김씨는 쌀 30㎏을 주는 대신 이씨에게서 옷 5벌을 더 받아온다. 김씨는 쌀 20㎏과 옷 15벌을, 이씨는 쌀 80㎏과 옷 5벌을 소유하고 둘은 만족한다. 바로 이런 배분 상태를 ‘파레토 효율’이라 부른다.

<그래프1>에서 생산가능곡선을 이루는 점들은 바로 주어진 노동과 자본에서 최대한으로 생산할 수 있는 쌀과 옷의 조합들이다. 노동과 자본의 한계로 곡선 밖의 생산은 실현될 수 없고 밑의 점들은 비효율적 생산이라 파레토 효율을 달성할 수 없다.

이렇게 최적의 생산가능곡선을 그리고 난 뒤에는 <그래프2>의 효용가능경계를 따져야 한다. 효용가능경계선상의 점들은 ‘파레토 최적’의 상황을 의미한다. 다만 곡선의 점이 어떻게 이동하느냐에 따라 김씨와 이씨의 만족감은 달라진다.

그렇다면 이 논리를 범죄 사전예방 기능을 갖고 있는 경찰과 사후 제재·교정 기능을 갖고 있는 교정시설에 대입하면 어떨까. 국가는 공공재가 갖고 있는 특성과 한계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최적의 재원 배분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두 부문의 전체 예산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경찰 대 교정의 비율을 80 대 20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20 대 80으로 할 것이냐는 정부와 국회,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결정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여론은 상대적으로 교도행정 예산을 늘리는 데 덜 우호적이다. 그게 7번방 감옥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

시네마노믹스 자문 교수진 가나다순

▲송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정재호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