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와 살리나스밸리. 둘 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에 있는 곳이지만 성격은 사뭇 다르다. 실리콘밸리는 정보기술(IT) 분야 벤처기업들의 요람이고, 살리나스밸리는 ‘세계의 샐러드 그릇’이란 별명을 가진 미국의 주요 채소 생산지다. 이렇듯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지역이 손을 잡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와 기업들이 살리나스밸리에 농업 벤처 회사를 세웠다고 보도했다. 회사 이름은 ‘스타인벡 이노베이션 클러스터’.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이후 농민들의 애환을 담은 소설 ‘분노의 포도’ 작가 존 스타인벡의 이름을 땄다.

농업에 실리콘밸리의 첨단 IT를 접목하겠다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예를 들어 농지에 센서를 장착해 놓고 태블릿으로 수시로 습기, 영양분 등의 상태를 점검한다. 습기가 부족하면 자동으로 물을 뿌려준다. 사람이 아닌 드론(무인 로봇)이 농약을 뿌리고 채소를 수확한다. 채소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자동으로 세척되고, 포장지에 붙어 있는 센서는 야채가 고객에게 판매될 때까지 제품의 상태를 점검해 생산자의 컴퓨터로 보내준다. 이전에 미국 곡창지대인 중서부 지역에서 쌀, 밀 등 장기 저장이 가능한 농산품에 일부 자동화 프로세스가 도입된 적은 있다. 하지만 상추, 딸기 등 금방 상하는 채소, 과일의 생산 및 유통에 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건 처음이라는 게 FT의 설명이다.

과거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농업에 투자하기를 꺼렸다.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구가 빠르게 늘고, 비만 등의 문제로 신선한 채소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농산물 쪽으로 쏠리고 있다.

스타인벡의 창업자 중 한 명이자 벤처캐피털인 SVG파트너스의 존 하트넷은 “실리콘밸리의 돈과 살리나스밸리의 재능이 ‘결혼’하면 새로운 농업기술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