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70년 '최대 위기'] 중대형사도 절반 이상 '링거 신세'…아침이 두려운 건설사
“사방이 암흑으로 뒤덮인 동굴에 갇힌 것 같아요. ‘거래절벽’과 ‘분양절벽’으로 꽉 막힌 부동산시장, 갈수록 줄어드는 공공공사와 해외 건설 등 건설 분야 3대 시장이 모두 막혔어요. 30여년 건설인생에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대형 건설사 A사장)

국내 건설업계가 1940년대 태동 이후 가장 혹독한 시련에 빠졌다. 중·대형 건설사 중 절반 가까이가 이미 ‘은행·법원의 손’(워크아웃 법정관리)에 넘어갔다. 상황이 이런데도 잠재적 부실기업은 꾸준히 늘고 있다. 만성적 일감 부족에 영업 실적은 적자투성이여서 회사마다 구조조정이 일상이 됐다.

◆공사 물량 급감에 ‘고사 위기’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곳곳에서 지연·무산되고, 도시형생활주택 등 민간 부동산 개발도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건설업계가 정부에 ‘부동산시장 회복 지원’을 외치는 이유다.

건설업체들의 심각한 경영난은 중소 건설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형 건설사 모임인 건설경영협회에 따르면 31개 회원사가 1분기 확보한 국내 공사 물량은 작년(15조2968억원)보다 44%나 줄어든 8조5594억원에 불과했다.

강경완 건설협회 조사통계팀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건설업계가 이렇듯 부도 공포에 떨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추가경정예산 조기 집행과 함께 주택·부동산시장 회복만이 당면한 ‘고사 위기’의 탈출 해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이자도 못 내는 건설사 ‘수두룩’

최근 대한건설협회가 내놓은 1분기 상장 건설사 111개의 경영활동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자보상비율이 64.8%로 전년 동기보다 184.3%포인트 급락했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손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눠 100을 곱한 수치로, 100% 미만이면 ‘벌어서 이자를 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건설사의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2조2686억원)보다 71.3% 쪼그라든 6506억원에 머물렀다. 해외 저가 수주에 미분양 주택 누적이 화근이다. H건설 해외수주 팀장은 “그동안 대형 건설사들의 ‘현금박스’ 역할을 해온 해외 건설이 금융위기 이후 밀어붙인 ‘저가 수주’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며 “세계경기 침체로 국내외 공사 모두 돈 벌어주는 현장이 흔치 않다”고 털어놨다.

빌딩 상가 오피스텔 등 민간 수익형부동산시장도 개발 부진이 심각하다. 경기 침체로 민간기업과 부동산개발업체들이 사업 추진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분양시장 침체로 미분양 주택 누적이 건설사들에 심각한 부채를 안기고 있다. 지난 5월 말 현재 전국 미분양 물량은 7만가구에 이른다. 가구당 평균 분양가를 3억원씩만 잡아도 건설업계는 21조원의 빚을 안고 있는 셈이다.

◆중대형사 절반은 은행·법원이 주인?

건설업계 13위인 쌍용건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끝내 채권단에 백기(워크아웃)를 들었다. 이로써 100위권 내 중대형 건설사 가운데 21곳이 은행과 법원의 관리권(워크아웃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대기업 계열 건설사와 설계업체(엔지니어링)를 제외하면 건설업계의 절반이 ‘중환자’인 셈이다.

중견 주택업체인 H건설 관계자는 “한국의 웬만한 건설사는 ‘은행·법원 소유’라는 자조적 농담이 나돈다”며 “요즘 건설업계의 단면을 정확히 표현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경영 불안이 확산되자 금융권은 자금 지원을 줄이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중단과 신규 사업 지원 난색에 건설사들은 심각한 경영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7월부터는 건설사들의 상반기 신용등급 평가 결과가 나올 예정이어서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상태로 전락할 기업이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중견 건설사인 J건설 회계담당 상무는 “중견업체 중 4~5곳은 법정관리 경계선상에 놓여 있다”며 “신용등급도 낮고 재무상태도 좋지 않아 손써볼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김진수/김보형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