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지난주 기자가 만난 한국은행 직원은 최근 한은이 겪고 있는 노노 갈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은 노조의 조태진 위원장과 대의원들이 서로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사정은 이렇다.

대의원(전체 56명)들은 지난 10일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조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그리고 이를 같은 달 19~20일 조합원 전체투표에 부쳐 91%의 찬성으로 확정했다. 한은 노조에서 위원장 불신임안이 가결된 것은 노조가 설립된 1988년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조 위원장은 대의원대회 결정을 수용하길 거부했다. 그는 “대의원대회 결정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투표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과정에서 조 위원장은 법무법인 새날에서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내용의 법률 자문서를 받아 사내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의원들은 법무법인 송현에서 “대의원대회 결정은 적법하다”는 내용의 자문서를 받아 맞대응했다.

대의원들이 위원장 불신임안을 가결한 것은 최근에 터진 직원 숙소 관리비 문제에서 비롯됐다. 감사원은 한은이 그간 전국 직원 숙소 관리비를 대납해온 것에 대해 ‘부당한 지원’이라고 지적했다. 한은은 감사원 지적 이후 관리비를 거주 직원이 직접 부담토록 바꿨다. 이 과정에서 노조위원장이 대의원들과 협의 없이 사측에 합의를 해줬다는 것이다. 여기에 노조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쌓인 위원장에 대한 불만이 이번 사태로 촉발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은 직원 A씨는 “위원장이 평소에 제(노조활동)보다 젯밥(승진)에만 관심이 많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60%대 초반이었던 당선 투표율보다 불신임 투표율(71%)이 더 높으면 말 다한 거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사측에서 위원장을 밀어주고 있다는 주장까지 불거지면서 한은 내부 갈등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조 위원장은 1일 성명서를 내 그간의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조 위원장은 “직원 숙소 관리비 문제와 관련해 노조 규약을 위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임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가처분 신청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 경제의 방향타를 잡고 있는 한은의 내부 분란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노조 내분은 빨리 수습돼야 한다.

양병훈 지식사회부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