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대응책으로 “유동성 공급을 통해 금융 안정을 유지하고 실물경제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대응책으로 “유동성 공급을 통해 금융 안정을 유지하고 실물경제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양적완화는 당기면 당길수록 돌아가는 힘(충격)이 더 커지는 고무줄입니다. (양적완화가) 거꾸로 갈 때는 조금만 줄여도 시장에 충격을 줍니다.”

국제금융 분야 세계적인 석학인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미국 양적완화 조기 축소에 대한 금융시장 불안에 대해 지난 28일 “시장이 과민반응하는 게 아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신 교수는 세계적인 학회인 SED(Society for Economic Dynamics) 연례 학술대회와 한국은행이 주최한 전 세계 중앙은행 직원 연수(GIP) 특강을 위해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다. 단독 인터뷰는 점심 시간을 이용, 샌드위치를 앞에 두고 1시간 남짓 진행됐다. 신 교수는 “(글로벌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투자자들의 위험추구 행위가 계속 이어졌지만 다들 위험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를 포함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통해 약 2조8000억달러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지금도 여전히 매달 850억달러의 채권과 모기지담보부채권(MBS)을 사들이며 돈을 풀고 있다.

신 교수는 국제 정책공조를 확대하기 위한 국제통화정책위원회(IMPC·International Monetary Policy Committee) 설립을 서두를 것을 제안했다. 중국 경제에 대해서는 “경착륙의 위험 요소가 잠재해 있다”고 우려를 표하며 “아베노믹스는 미 양적완화 축소로 성공할 확률이 더욱 낮아졌다”고 진단했다.

▷최근 미 양적완화 축소 충격이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습니다.

“단기적으로 사나흘 출렁거렸다가 등락을 반복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지난 2~3년간 축적된 위험은 엄청납니다. 2007~2008년을 보세요.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문제는 2007년부터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08년 9월에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거죠. 1년간 날이 가문 가운데 잎도, 가지도 말라가고 있었던 겁니다. 러먼 사태는 메마른 숲에 불을 지른 겁니다. 이번에도 위험이 워낙 오래 쌓였습니다. 충격의 끝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시장이 과민반응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는 투자자들에게 ‘야생 돼지’라는 표현까지 썼죠. 하지만 과도한 표현입니다. 그만큼 충격이 컸습니다. Fed는 투명한 금리정책으로 단기금리를 통해 장기금리를 잡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안 맞아떨어졌어요. Fed도 상당히 당황했을 겁니다. 시장참여자들이 어느 정도 위험자산을 갖고 있고 금리 인상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생각했어야 했어요. 그동안 위험자산 선호 행위를 부추겨, 자산가격이 오르면 부실 부담을 줄이고 경제도 살린다는 정책이었죠. 그러는 가운데 꼬리에 꼬리를 물며 위험이 쌓였습니다. 위험이 지나치게 축적된 탓에 조금만 줄여도 위력과 반응 속도가 크게 나타나는 겁니다.”

▷미 Fed의 양적완화 축소가 성급한 건 아닌가요.
“오히려 양적완화 정책을 너무 오랫동안 펼쳤다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선 여기까지 안 오고 보다 일찍 끝나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금융 안정을 유지하고 금융 충격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태풍 준비는 해가 날 때 하는 건데 이미 때를 놓쳤습니다. 지금은 시장 경색이 나타나지 않도록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충격을 최소화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신흥국의 충격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까.

“한국은 외환시장 3종 세트 등 여러 가지로 대응해 왔고 실물도 비교적 탄탄합니다. 하지만 여타 신흥국은 다릅니다. 외환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양적완화는 고무줄 같아 당긴 만큼 충격이 클 겁니다. 위험이 너무 커져 신흥국 자체적으로 충격을 줄일 수단도 많지 않습니다. 인도는 이미 외환위기에 접어들었고 터키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매우 취약한 상태입니다.”

▷세계 각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미 Fed의 통화정책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줍니다. 최근 사태는 국제 경제협력(공조)의 툴이 약하다는 문제점을 절실히 깨닫게 했습니다. 위험추구 채널로, 달러화를 통해 세계 금융은 이미 한 묶음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IMPC 구성을 서둘러야 합니다. 국제결제은행(BIS) 내 중앙은행 총재 모임을 비공식 회동이 아니라 공식기구화하는 겁니다. 한 나라의 통화정책이 전 세계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해 IMPC 내 논의를 최소한이라도 공시하고 공론화하는 겁니다.”

▷중국도 금리가 급등하고 신용경색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5월 통화(M2) 증가율은 약 16%입니다. 경제성장률의 두 배가 넘습니다. 이는 대출이 과도하다는 의미입니다. 은행 규제를 벗어난 그림자금융(섀도뱅킹)은 더욱 심각합니다. 이들 돈이 부동산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에 투자돼 있습니다. 시진핑 정부는 이를 잡기 위해 돈줄을 조인 겁니다. 그러면서 금리가 폭등하고 돈이 궁해진 거죠.”

▷중국발 금융위기 가능성도 있나요.

“중국으로부터 위기가 한국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채권시장이 문제일 수는 있습니다. 워낙 글로벌화되면서 전 세계로 동시에 충격이 오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덜한 편일 겁니다. 오히려 실물 경제 충격이 심할 수 있습니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도 나옵니다.

“경착륙에 대한 위험 요소는 잠재해 있습니다. 과거 금융시장 규모가 작을 때처럼 규제를 통해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단계도 지났습니다. 통제 못할 빈틈이 생겼죠. 중국처럼 엄격하게 통제되는 나라도 외부 경제 여건의 영향을 받을 만큼 유동성이 진짜 글로벌화된 겁니다. 경착륙의 위험요소가 워낙 많기 때문에 한국으로선 그 가능성을 눈여겨봐야 하고 충분히 대처해야 합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흔들리기 시작한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 제동이 걸린 때가 5월입니다. 벤 버냉키 Fed 의장이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에 출석해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언급한 시기와 겹치죠.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는 미국의 출구전략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달려있거든요. 아베노믹스의 가장 중요한 전제가 엔화 약세로 엔캐리트레이드(저리의 엔화를 차입해 고수익 통화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거래)를 유도하는 겁니다. 그런데 미국의 양적완화가 축소될 경우 위험추구 행위를 부추겼던 풍부한 유동성이 줄어들게 됩니다. 아베노믹스의 전제 중 하나가 망가지는 거예요.”

▷미 양적완화 축소로 아베노믹스가 실패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성공 확률은 상당히 낮아졌다고 보면 됩니다. 아베노믹스는 그 자체에 모순이 있는 정책입니다. 시장이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믿는 순간 그게 실패의 씨앗이 됩니다. 인플레이션 기대와 국채금리의 관계를 보세요. 아베노믹스의 목표가 인플레이션 기대를 끌어올리는 건데 그럼 국채금리가 상승하겠죠. 그런데 국채금리가 먼저 오르면 일본 정부의 재정 부담이 너무 커집니다.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위해선 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 국채금리가 올라야 합니다. 문제는 시장이 항상 먼저 움직인다는 겁니다.”

▷한국도 금리 정상화 단계를 준비해야 할까요.

“장기금리가 올랐기 때문에 이미 시장에선 정상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동안 시장은 양적완화로 많이 왜곡됐던 상태였습니다. 금리 정상화로 과잉유동성의 산물인 가계부채를 억제할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플레이션 압박이 줄었고, 통화정책에도 재량권이 더 생길 겁니다.”

▷한국 경제가 정부의 전망(2.7%)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요.

“전망이란 건 언제나 쉽지 않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외충격이 일어났을 때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펼치는 겁니다. 부는 민간부문이 창조하는 거고요. 정부나 중앙은행은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해 민간부문의 활동을 받쳐주는 것이 최선입니다. 긍정적인 점은 실물경제 중 (수출 등) 몇 가지 부분이 아주 강하다는 겁니다. 엔진으로 따지면 실린더 중 몇 개가 아주 강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현송 교수는 누구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국제금융 권위자다. 1998년 투기자본의 외환시장 공격에 대한 정책 당국의 대응을 다룬 논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6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서 “서브프라임이 세계 경제에 대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견했다.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영국으로 건너간 후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대, 런던정경대(LSE)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6년부터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신 교수의 특징은 공급 중시 학자들이 홀대하는 금융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현 상황에 대한 명확한 진단능력 덕분에 많은 국제금융기구에서 자문요청을 받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미국 중앙은행(Fed), 영국 중앙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자문위원을 지냈다. IMF 이코노미스트로도 활약했다. 2010년 한 해 동안은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일했다.

서정환/고은이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