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종로경찰서의 '빗나간 충성'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쓰지 말아야 할 기사 아닙니까.” 이상하 서울 종로경찰서 경무과장(52·간부후보 39기)은 현충일 다음날인 지난달 7일자 본지에 실린 ‘청와대 사수한 최규식 경무관 동상…44년 만에 묵은 때 벗다’ 기사와 관련, 최근 기자에게 이렇게 항의했다. 최 경무관은 196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노리고 청와대에 침투하려던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을 막다 순직한 전 종로경찰서장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 열사들을 널리 알림으로써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작성한 기사에 대해 후배 경찰이 ‘대한민국 국민’을 들먹여가며 이해할 수 없는 항의를 한 것이다. 항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많은 경찰이 본(本)으로 삼아야 할 선배의 공적을 널리 알린 기자의 소속사를 들먹이며 “앞으로 잘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경찰 간부가 자제력을 잃어가면서까지 기자와 언론사에 ‘언어 폭력’을 휘두른 까닭을 알고는 실소(失笑)를 참기 어려웠다. 종로경찰서는 최 경무관의 업적을 기려 박 전 대통령이 1969년 청운동에 세운 동상을 국가가 관리를 맡도록 국가현충시설 지정을 신청할 예정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취재하자 그는 보도를 적극 만류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연관돼 경찰이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낸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자칫 ‘코드 맞추기’로 오해될 수 있으니 기사화하지 말아달라”는 게 이 과장의 주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취임식에 최 경무관의 유족들을 초대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종로경찰서는 대통령 선거 직전이었던 지난해 11월 최 경무관 동상이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는 등 ‘공’을 들여왔다. 종로경찰서 측은 최 경무관 동상을 말끔하게 단장했다는 사실이 청와대에 ‘과잉 충성’으로 받아들여지지나 않을까 엉뚱한 걱정을 한 것이다.

최 경무관의 아들 민석씨는 그동안 “대통령을 살해하려던 김신조는 기억하고, 아버지 같은 분들을 잊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해왔다. 목숨을 걸고 청와대를 지켜낸 선배 경찰의 업적을 적극적으로 알리진 못할 망정 자신들의 입장만을 내세워 언론의 입을 막으려 한 것이 유족들에게 ‘정치 경찰의 구태’로 비쳐지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홍선표 지식사회부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