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전면 재정비촉진계획 취소…상인들 불만 토로

전면 재정비촉진계획 취소가 확정된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한복판.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작은 공원엔 벼와 기장이 심어져 있고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약제를 치고 있다.

논 바로 옆엔 '북한산~종묘~남산~한강~관악산으로 이어지는 녹지 축을 조성해 기쁨의 광장을 만들어 시민에게 바치겠다'고 적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인과 재정비 사업 홍보 패널이 여태 남아있어 시민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인근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문화재청이 건물 높이 등 개발에 제한을 걸자 사업성이 크게 떨어졌고 서울시는 결국 지난달 전면 재정비 계획을 취소하고 소규모 리모델링만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SH공사의 자금 1천213억원이 투입돼 사업이 진행 중인 4구역과 968억원을 들여 기존 건물을 허물고 공원을 만든 1구역만 남은 것이다.

거대한 녹지 축의 시작점이 되게 하겠다는 당초 포부와 달리 비싼 금싸라기 땅속 외딴 섬이 된 작은 공원은 상인들 사이에선 오래전부터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기자가 찾은 지난 30일 낮. 붐비는 탑골공원에서 옮겨온 어르신 서너 명만이 논을 멍하게 바라볼 뿐이다.

인근 상인들은 논 얘기만 하면 혀를 끌끌 찼다.

전자상가 내 한 점포의 양모씨는 "1천명 상인이 있던 상가를 허물어 실업자를 만들더니 이젠 저 비싼 땅에 벼농사를 짓는다.

도둑놈이 따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논을 관리하는 사람만 시에서 10명인가 나오는데 벼가 익기도 전에 베어 가 우린 잘 알지도 못한다"며 "노인들이 좀 오니 차라리 풍물시장 같은 걸 만드는 게 나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공원과 별개로 세운구역 전체가 전면 재정비촉진계획 취소 발표 후 어수선해졌다.

상인들은 '오락가락' 행정 탓에 괜한 돈만 쓰고 구역이 분할되면서 상권만 죽었다고 불평했다.

42년째 2구역에서 가게를 운영한 신현호씨는 "애초에 괜한 돈 들이지 말고 리모델링하자는 우리 의견을 무시하고 1구역 건물을 헐어 상권을 죽이더니 결국 사업성도 떨어져 이도 저도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수천억원을 들여 보상하고 몇 년째 땅은 놀리고 있다"며 "시가 전면 개발계획을 취소했지만 시행사는 공사비도 못 건질 처지가 되니 2구역과도 묶어보려고 시도하고 중국 건설기업들도 불러보고 별 시도를 다 하는데 신통치 않은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상인들은 시가 애초 이 구역의 실상을 가장 잘 아는 상인들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개발 계획을 세웠던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씨는 "이번에 소규모 분할개발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뉴스를 통해 알았다"며 "우리 의견을 하나도 듣지 않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li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