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 선제적 대응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 부문의 인력을 수익성이 좋은 사업 부문 혹은 타계열사로 배치하는 방식이다. 업황이 좋지 않은 건설과 증권뿐 아니라 이익을 내고 있는 정보기술(IT) 업체까지 위기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 및 사업구조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1조원 이상 이익 내도 조정 대상
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코닝정밀소재는 연말까지 전체 직원 4000여명 중 10% 안팎을 다른 계열사로 전환배치할 계획이다.
지난해 1조6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는 등 영업이익률이 50%가 넘지만 주력 사업인 액정표시장치(LCD)용 유리기판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어서다. 이 회사는 사내 게시판에 수시로 공지를 띄워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 삼성SDI,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으로 옮길 직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삼성SDS는 이날 조직 개편을 통해 지난달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국내 공공·금융 IT사업부 인력 1500명 중 일부를 재배치했다. 해외사업부와 물류 등 내부 신사업 부문에 단계적으로 투입할 예정이다. 지원부서에 따라 이동 대상 인원 중 일부는 추가 교육을 받거나 조정될 것이란 관측이다. 삼성SDS 관계자는 “아직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도 있는 만큼 순차적으로 이동할 것”이라며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룹의 경영진단을 받은 삼성엔지니어링도 이날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우선 1분기 대규모 적자의 원인이 된 해외플랜트 부문에 위험 관리를 전담하는 조직인 리스크매니지먼트(RM)팀을 신설했다.
수주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프로젝트별로 실적을 평가받는 각종 태스크포스(TF)도 새로 만들었다. 본사 핵심 인재를 현장으로 배치하고 그룹 내 두 명의 부사장도 영입했다.
앞서 작년 하반기에 삼성물산은 상사 부문 전체 인력의 10%를, 삼성중공업은 건설 부문 인력 30~40명을 각각 타계열사로 이동시켰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11일부터 직원들에게 신청을 받아 100여명을 다른 삼성 계열사로 옮기도록 할 계획이다.
○선제적 위기 극복 조치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삼성 계열사들이 조직 재배치에 잇따라 나선 것은 미래 수익력을 갖출 수 있는 조직 역량을 조기에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삼성전자만 고수익성을 유지할 뿐 상당수 계열사가 저성장 시대에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대응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은 지난달 26일 삼성 수요사장단 회의에서 “현 시점은 저성장에 적응해나가는 과도기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저성장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 편중된 사업구조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1분기 8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낸 삼성전자는 그룹 매출의 60%와 영업이익의 90%가량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정보기술(IT) 환경이 급속히 변하는 만큼 삼성전자의 모바일 사업에 의존하는 상황은 리스크(위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지난달 7일 신경영 20주년 기념사를 통해 “앞으로 우리는 1등의 위기, 자만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삼성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교역 여건이 어려워지고 대내적으로는 규제의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며 “안팎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몸집을 줄이는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정현/김대훈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