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1913년 vs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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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
![[한경포럼] 1913년 vs 2013년](https://img.hankyung.com/photo/201307/02.6935895.1.jpg)
우드로 윌슨(1856~1924)이 미국 28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1913년 3월4일이었다. 이날 취임식을 보러 미국 전역에서 30만명이 운집했다. 남북전쟁 이후 첫 남부 출신 대통령이었던 윌슨은 ‘새로운 자유(new freedom)’를 외치며 미국인들의 정신과 자긍심을 일깨우려 했다. 먼로 대통령 이후 전통적 외교노선인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개입주의로 전환했다. 시대 변화의 조짐이 드러난 것이다.
1913년은 ‘현대’의 출발점
당장 19세기 말 일어났던 기술 혁명과 산업 발전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었다. 베를린과 뉴욕을 잇는 케이블이 가설되고 전화선이 연결됐다. 새로운 증기선은 미국과 유럽의 거리를 훨씬 단축시켰다. 1870년부터 늘어난 세계 교역량은 특히 1913년 최고조에 달했다. 중국과의 무역도 급증했다. 이 해의 세계 교역규모는 1970년이 돼서야 따라잡을 정도였다. 전례없이 글로벌화된 지구촌이었다.
산업에서도 기존 제조과정을 뒤엎는 근본적 혁신이 나타났다. 포드자동차가 컨베이어를 이용한 대량생산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1913년이었다. 대량생산 체제는 제조 원가를 절감시켜 생산 혁명을 일으켰다. 2100달러에 판매되던 자동차는 825달러까지 낮아졌다. 대량생산 시스템은 급속히 세계로 전파됐고 대량 소비로 이어졌다. 대중소비 사회라는 말이 공식화되기 시작했다. 18세기부터 서서히 진척돼 가던 각국의 도시화도 가속도가 붙었다. 노동과 자본이 집약된 산업 구조 때문이었다. 너도나도 도시로 몰려들었다.
미국 중앙은행(Fed)도 1913년 설립됐다. 1907년 금융 버블에 따른 공황을 경험했던 터다. 윌슨은 취임하자마자 이전 대통령이 꺼렸던 화폐 금융 정책에 손을 댔다. 버블 붕괴로 인해 은행들이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글로벌체제와 대량생산, 도시화, 금융체제의 확립 등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 중심을 관통하는 정신은 변화와 혁신에 대한 노력과 의지였다.
영원한 시대정신은 변화와 혁신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 기술들은 세계를 보다 글로벌화하고 하나로 만든다. 당장 생산이나 소비체제를 바꾼다. 사람의 노동력을 컴퓨터와 로봇이 대체한다. 대량생산보다 주문생산체제가 각광받는다. 지식과 정보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기업활동도 달라진다. 국가의 간섭과 관계없이 세금이 보다 싸거나 입지여건이 좋으면 언제든지 옮겨갈 수 있는 구조다.
자연스레 대중사회가 해체되고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미 제너레이션(Me Generation)’ 사회로 옮겨간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예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신인류가 등장한 마당이다. 참여 공유 개방을 내세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도 인기다. 정보와 지식 집약적 기술 혁신이 이뤄낸 것들이다. 겉으로 보면 2013년은 100년 전 산업과 사회구조와 완전히 구별된다. 하지만 근본 패러다임에선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개척자들의 땀이 이면에 깔려 있다. 새 기술을 만들고 새 시장을 창출하며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만이 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켰으며 패러다임을 바꿔왔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영원한 시대정신이 아닐까.
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