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아주 특별한 봉평 문학기행
얼마 전 아주 특별한 여행을 했다. 강원도에 계시는 시각장애인분들과 함께 강원도 봉평에 있는 이효석문학관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내 고향이 강원도이고, 또 이효석문학상 제1회 수상자이기도 해서 이제까지 일반 독자들과는 여러 번 이효석문학관에 갔었고, 중고등학생들과도 여러 번 그곳을 방문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분들과 함께 여행하며 이효석 선생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제의받고, 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야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강연을 듣는 사람들이 시각장애인들이라 이들에게 어떻게 강연을 해야 할지 고민이 참 많았다. 내가 이제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무얼 설명하는 방식이 내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여행을 겸한 문학 강연일 경우 작품 무대 설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때도 역시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한 설명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몰라 이들과 함께 문학기행을 떠나며 나도 그냥 이들 속에 한 사람의 동료가 되자고 생각했다.

봉평에 있는 가산문학공원에 세워져 있는 이효석 선생의 흉상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공원에 가득 서 있는 아름드리 돌배나무에 이제 막 달린 열매를 이들과 함께 만지며 나무에 대한 설명도 했다. 공원 한쪽에 있는 충주집에 대해서도 그때 당시 주막으로 사용하던 초가집의 구조와 마당의 모습에 대해서도 이분들의 오랜 기억 속의 어떤 공간을 떠올리도록 설명을 했다.

사립문을 중심으로 빙 둘러 있는 나무 울타리는 함께 여행한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손으로 더듬어보고, 그것이 어떤 나무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 모양은 어떤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함께 충분히 그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특히나 내 어린 날 시골마을에 남아 있던 이런 집들에 대한 추억이 이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설명했다. 그렇게 한참 설명을 하다 보니 지금 내가 이들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때문에 내가 지금 내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소설가 가운데 레이먼드 카버라는 작가가 있다. 이 작가의 작품 중에 ‘대성당’이라는 작품이 있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주인공의 아내가 먼 곳에 있는 시각장애인과 펜팔을 한다. 어느날 먼 곳에 있는 시각장애인 친구가 아내에게 당신을 만나러 그곳에 한번 놀러가고 싶다고 말하고 아내가 흔쾌히 응한다. 친구가 방문한 날 저녁 아내는 친구를 안내하느라 조금 지쳐 있고, 시각장애인인 친구와 남편이 거실에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하며 시각장애인이 예전에 방문한 어떤 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성당 모습을 설명할 때 시각장애인 친구는 커다란 종이 위에 자기가 볼펜을 잡고 볼펜을 잡은 자기의 손을 여자친구 남편에게 가만히 감싸쥐듯 잡으라고 한 다음 예전에 자신이 경험한 대성당의 그림을 그려나간다.

시각장애인들과 봉평을 방문해서 그곳에 있는 이효석 선생의 생가와 가산공원에 있는 나무들과 충주집 구조를 설명할 때 나는 어느 한 분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했다. 이 분과 함께 나무를 더듬고 울타리를 더듬으며 우리의 느낌을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내 설명을 듣고 기뻐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보며 이들 마음 안에 정말 대성당과 같은 아름다운 성채가 하나씩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사실 이제까지는 작가로서 글을 쓰며 나는 내 글 속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조금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 내 소설에서 모두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들도 떠올리고 이해하기 쉬운 묘사를 해야겠다 하는 생각도 하고, 언젠가 이들만을 위한 소설 한 편을 꼭 써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순원 <소설가 sw83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