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사이버 공간 규율, 한국이 주도해야
영국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드레이크경은 원래 해적이었다. 당시 낭만적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풍조로 인해 약탈은 무용담이 됐고,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에도 영향을 미쳤다. 역설적으로 해적은 동심을 자극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해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지리상의 발견에 내포된 인간의 탐욕과 국가권력에 주목한다. 신대륙과 신항로는 새로운 미지의 공간이었다. 국가 기능이 닿지 못 하는 그곳에서 해적은 은밀한 약탈을 자행했고, 국가는 사후적으로 이들을 이용하거나 통제하기에 이른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 500여년, 인류는 사이버공간을 발견한다.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훗날 이는 ‘제2차 지리상의 발견’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두 사건은 유사점이 많다. 오늘날 국경을 넘나드는 해킹과 사이버테러는 은행을 털거나 국가안보를 위협하기도 한다. 16세기 해적행위가 영국과 스페인 간 갈등의 씨앗이 됐듯이,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사이버 공격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해적인 드레이크가 해군사령관에 임명돼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쳤던 것처럼 현대의 일부국가들은 일류 해커를 채용한다.

이런 유사점은 우연이 아니다. 국제규범이 없거나 불완전하기에 지구상이든 사이버상이든 새로운 익명 공간에서의 사적 약탈은 조장된다. 대항해시대 해적의 발호는 정예해군의 정비와 국제해사법에 대한 합의가 없었던 데 기인하듯이, 현재 소말리아에서 해적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국가기능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사이버해적은 과거 해적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가진 데다 그 피해도 치명적이다. 국가 핵심시설인 통신, 금융, 운송, 에너지 등은 사이버체제에서 운영되는데, 이에 대한 공격은 국가전체를 일순간 마비시킨다. ‘대량교란무기’인 사이버공격은 ‘대량파괴무기’만큼 심각하므로 이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노력이 필수적이다.

오는 10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3차 사이버 스페이스 총회는 이런 규범 마련을 위한 장이다. ‘개방되고 안전한 사이버 공간과 지구촌 번영’을 테마로 한 서울총회는 사이버공간의 혜택을 극대화하면서도 부작용을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800여명의 국제 전문가가 한 자리에 모인다.

사이버공간의 혜택은 실로 무한하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정보교환과 거래비용 감소를 통해 경제성장과 시민의식의 성장, 세계화를 촉진시킨다. 인터넷 없이는 재스민혁명과 강남스타일을 논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사이버 약탈이나 대량교란무기의 위협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자유롭고 안전한 인터넷 세상을 구축하는 길은 요원하다. 서울총회는 사이버공간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사이버공격이나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면서 사이버공간을 통한 지속가능한 경제·사회적 번영에 기여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이 될 것이다.

문제는 사이버정책에 대한 국가 간 이견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민주화 또는 기술수준이 낮을수록 인터넷 개방보다는 정부통제를 선호하며, 사이버범죄 처벌을 위한 공조에도 소극적이다. 2011년 런던총회와 지난해 부다페스트총회에서도 합의 도출이 어려웠듯이 서울총회 역시 낙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제적 관심은 뜨겁다. 싫든 좋든 사이버공간의 비중이 증가함에 따라 국제규범에 대한 지지도 늘고 있으며, 개도국 또한 인터넷 경제로 눈을 돌린다. 르완다와 같이 육지로 둘러싸여 고립된 내륙국도 인터넷 허브국가가 되기 위해 정보통신기술(ICT) 개발과 한국과의 협력을 원한다.

ICT 선도국인 한국에 대한 기대 역시 크다. 제3차 총회의 서울 개최도 한국의 역량을 인정받은 결과다. 정부는 서울총회의 성공을 위해 우리의 경험과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세계경제 성장과 세계화의 순기능을 돕고, 신뢰받고 평화로운 사이버 공간을 조성하는 데 노력함으로써 지구촌 행복에도 기여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우리가 주최하는 최초이자 최대의 국제행사인 사이버 스페이스 총회에 국민적 관심과 성원이 필요한 때다.

윤병세 < 외교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