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지하경제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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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세상에는 아무리 없애려 해도 좀체 없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마약 매춘을 비롯한 각종 범죄 탈세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반짝 단속을 벌이면 잠깐 줄어드는 듯하지만 이내 다시 원상 복구된다는 점이다. 마치 영원히 박멸되지 않을 것 같은 바퀴벌레나 모기처럼 반갑지 않지만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그런 것들이다. 일반인들의 시각은 그래서 아무래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인들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런 사회악을 때려잡자는 구호는 언제 써먹어도 약발이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에서 범죄와의 전쟁, 성매매와의 전쟁 등을 들고 나온 것도 그래서다. 정부가 뭔가 사회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 집권세력에는 매우 중요하다.
오히려 커지는 지하경제
지하경제 양성화는 그런 사회악 퇴치 캠페인의 박근혜 정부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운 탓에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 현 정부에 지하경제 양성화는 아주 쓸모 있는 구호였을 것이다. 세수도 벌충해주고 사회기강도 다잡을 수 있는 요술방망이처럼 여겨졌을 수도 있다. 향후 5년간 27조원의 세금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거둬들이겠다는 계획도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범죄와의 전쟁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사회악 근절책에는 늘 한계가 있다. 행정력을 동원해 바짝 고삐를 죄면 잠깐 수면 아래로 내려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내 다시 고개를 든다는 점이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한계는 더 극적이다. 단기적으로는 지하경제를 오히려 더욱 늘리고 장기적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벌써 이런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올 들어 5월까지 5만원권 순발행액은 4조2524억원으로 전년보다 60%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환수율은 64%대에서 52%대로 급격히 낮아졌다. 5만원권이 사장되고 있다는 얘기다. 금고는 날개돋친 듯 팔리고 국제 금값이 폭락하는데도 국내에서는 골드바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1억원 초과 고액 정기예금 계좌 수가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것도 이례적이다. 모두 지하경제가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양성화의 역설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돈맥경화 불러올 수도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범죄나 매춘 등에 대한 단속과 달리 보다 직접적으로 경제에 영향을 준다는 데 있다. 가뜩이나 경제사정이 녹록지 않은 요즘 세무조사나 해외계좌 추적 등은 소비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기 마련이다. 이는 결국 돈맥경화로 이어져 경기회복에도 걸림돌이 된다.
물론 지하경제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원론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처럼 세무조사를 동원해 밀어붙이는 식으로는 양성화는커녕 세수만 줄어든다는 데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세수는 전년보다 8조원 이상 덜 걷혔다. 목표 대비 세수 진도율 역시 35.4%로 최근 3년 평균(40.5%)에 한참 못 미친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20~25%로 OECD 평균(13%)보다 훨씬 높다며 양성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금융 및 조세체계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 전반이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지 단기적으로 탈세를 때려잡는다고 될 일은 아니다. 이솝우화처럼 칼바람은 외투를 벗기기는커녕 나그네를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지하경제 양성화를 ‘지하경제 활성화’로 잘못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말실수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하지만 정치인들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런 사회악을 때려잡자는 구호는 언제 써먹어도 약발이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에서 범죄와의 전쟁, 성매매와의 전쟁 등을 들고 나온 것도 그래서다. 정부가 뭔가 사회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 집권세력에는 매우 중요하다.
오히려 커지는 지하경제
지하경제 양성화는 그런 사회악 퇴치 캠페인의 박근혜 정부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운 탓에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 현 정부에 지하경제 양성화는 아주 쓸모 있는 구호였을 것이다. 세수도 벌충해주고 사회기강도 다잡을 수 있는 요술방망이처럼 여겨졌을 수도 있다. 향후 5년간 27조원의 세금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거둬들이겠다는 계획도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범죄와의 전쟁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사회악 근절책에는 늘 한계가 있다. 행정력을 동원해 바짝 고삐를 죄면 잠깐 수면 아래로 내려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내 다시 고개를 든다는 점이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한계는 더 극적이다. 단기적으로는 지하경제를 오히려 더욱 늘리고 장기적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벌써 이런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올 들어 5월까지 5만원권 순발행액은 4조2524억원으로 전년보다 60%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환수율은 64%대에서 52%대로 급격히 낮아졌다. 5만원권이 사장되고 있다는 얘기다. 금고는 날개돋친 듯 팔리고 국제 금값이 폭락하는데도 국내에서는 골드바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1억원 초과 고액 정기예금 계좌 수가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것도 이례적이다. 모두 지하경제가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양성화의 역설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돈맥경화 불러올 수도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범죄나 매춘 등에 대한 단속과 달리 보다 직접적으로 경제에 영향을 준다는 데 있다. 가뜩이나 경제사정이 녹록지 않은 요즘 세무조사나 해외계좌 추적 등은 소비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기 마련이다. 이는 결국 돈맥경화로 이어져 경기회복에도 걸림돌이 된다.
물론 지하경제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원론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처럼 세무조사를 동원해 밀어붙이는 식으로는 양성화는커녕 세수만 줄어든다는 데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세수는 전년보다 8조원 이상 덜 걷혔다. 목표 대비 세수 진도율 역시 35.4%로 최근 3년 평균(40.5%)에 한참 못 미친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20~25%로 OECD 평균(13%)보다 훨씬 높다며 양성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금융 및 조세체계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 전반이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지 단기적으로 탈세를 때려잡는다고 될 일은 아니다. 이솝우화처럼 칼바람은 외투를 벗기기는커녕 나그네를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지하경제 양성화를 ‘지하경제 활성화’로 잘못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말실수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