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개인 비리로 구속됐다. 최고 정보기관 직원들이 골방에서 댓글을 달고, 미행하고, 은밀히 서류를 유출시키고, 감금하는 따위의 추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더니 조직의 수장은 엉뚱하게도 억대 수뢰혐의로 구속되는 볼썽사나운 꼴이 벌어지고 말았다. 세계 10위권을 바라보는 경제 강국이면서 65년 분단국인 한국의 최고 정보기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 힘든,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운 일이다.

‘댓글사건’은 체면 여부를 제외한다면 정치권에서 주고받은 맞고소·고발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검찰 수사도 완전히 끝나지 않아 사법적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좀더 지켜볼 수밖에 없다. 다만 수사 3개월 만에 검찰이 전 원장을 개인 비리로 구속시킨 것은 별건 수사였다는 의혹을 지울 길이 없다. 특정 의혹을 겨냥하다 자신이 없거나 주변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건으로 얽어매는 별건 수사 관행은 검찰의 고질적인 병폐다. 검찰 스스로도 이런 구식 수사는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던, 소위 ‘털면 다 나와!’라는 식의 구태 수사다. 때문에 정권 출범 초반에 국정원을 길들여 놓겠다는 것이 검찰 분위기라는 의심마저 갖게 된다는 관전평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내부비리랍시고 다른 정치세력에 기밀을 누설하면서 퇴직 후 자리를 흥정하는 직원까지 있었다니 개탄할 일이다. 대북업무에 집중하면서 산업정보 유출을 막고 사이버테러에 맞서는 등 역량강화가 시급하다. 그러나 대북업무에 집중하라면서 국내 파트를 없애라는 식의 주문은 무분별하고 비이성적이다. 북의 대남 전략이 국내 곳곳의 친북세력과 치밀하게 연계돼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요, 국내에 잠입해 활동하는 북한 간첩만도 수천에서 수만에 이른다는 상황이다. 국내 파트를 폐지하라는 주장이 혹시 국정원을 무력화하려는 국정원 수사대상자들의 책동이 아닌지 역설적인 의심마저 갖게 된다.

정치불개입이 관건이지 이를 빌미로 국내활동을 접으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는 민주당도 새누리당도 내심 잘 알고 있을 터다. 과격한 주장을 경쟁적으로 내놓는다고 실제로 국정원이 개혁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