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쟁력 하락 방치가 문제"
구조조정 시스템 한계…M&A 등 시장에 맡겨야
당시만 해도 이 회사의 전망은 밝아 보였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탓에 쌍용건설 대주주가 된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여러 차례 시도한 매각이 불발됐을 때도 “사겠다는 곳이 많다”고들 했다. 하지만 쌍용건설은 팔리지 못했고, 완전자본잠식에 빠져 지난 6월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구조조정 끝나도 경쟁력 없어 ‘허약’
쌍용건설 외에도 씨앤중공업, 벽산건설, 남광토건, LIG건설(옛 건영), 보루네오가구 등 적지 않은 기업이 ‘2차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이 중 2001~2006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은 씨앤중공업은 2008년 워크아웃에 돌입했다가 채권단이 ‘못 살리겠다’고 판단해 사실상 청산 과정에 들어가 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워크아웃을 겪었던 남광토건은 2010년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했다가 작년에 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02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벽산건설도 남광토건과 마찬가지로 2010년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2년 뒤엔 아예 법정관리를 택했다.
왜 한 차례 구조조정을 거쳐 정상화된 기업들이 다시 구조조정의 길에 들어서는 걸까.
채권단은 경영진에 책임을 돌린다. 채권단 자금이나 국민의 혈세를 들여 기업을 살려내면 경영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얼토당토 않은 투자를 시도하다가 다시 고꾸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쌍용건설 채권단 관계자는 “1차 구조조정 때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는데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등을 벌이다 자본이 잠식돼 또 정상화를 해야 한다며 신규자금 4450억원을 달라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규모가 큰 기업이라고 무작정 돈을 대주니 ‘손 벌리는 버릇’이 든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주장은 다르다. 채권단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돈’만 따지다 보니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방치했다고 주장한다. 워크아웃 중인 한 기업 관계자는 “채권단은 자산을 팔고 인원을 감축하는 등 돈 되는 일에만 집중한다”며 “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투자하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막으니 경쟁력이 생기겠느냐”고 강조했다. 기업 경영진과 채권단이 서로 기(氣)싸움을 벌이는 것도 경쟁력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는 “구조조정 기업의 경쟁력을 되찾는 책임은 기본적으로 경영진에게 있다”며 “채권단도 회사가 장기적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일정 규모의 신규투자 등을 용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제도 손질해야” 주장도
기업 구조조정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한 은행의 구조조정 담당 임원은 “경기 변동에 민감한 건설·조선·해운업종은 아무리 채권단이 돈을 퍼부어 기업 재무상태를 개선해 놓아도, 업황이 나빠지면 다시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은 채권단 위주의 기업개선작업보다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억지로 부실기업들의 생명을 연장해 줄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상시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도록 벌처펀드 등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