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미시비스베이 리조트 인근에 있는 에코공원. 최병일 기자
필리핀 미시비스베이 리조트 인근에 있는 에코공원. 최병일 기자
필리핀의 섬은 모두 7107개. 잘 알려진 보라카이나 세부 보홀 같은 곳을 빼고도 수없이 많은 섬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풍경을 감추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루손 섬의 레가스피다. 아직도 흰 연기를 토해내는 마욘화산과 식민지 시대 유물까지 고즈넉하게 품고 있는 레가스피는 필리핀의 숨겨진 보물이다. 마닐라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만에 루손섬 남쪽 레가스피공항에 내려앉았다. 재벌들의 휴양지로 많이 알려진 레가스피는 필리핀 남동부 알바이군의 행정 중심지다. 원래 레가스피 이름은 알바이였지만 스페인의 탐험가이자 초대 필리핀 총독이었던 미구엘 로페스 데 레가스피 장군의 이름을 따 바꿨다.

성벽 인트라무로스·마욘화산…숨겨진 비경 일품
16세기를 살았던 유럽인 중 레가스피만큼 아시아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없을 것이다. 탐험가라고는 하지만 스페인 제국의 영토 확장에 앞장섰던 식민주의자였다. 레가스피가 필리핀 세부에 상륙한 것은 1556년. 현지인들과 전투를 벌여 정복활동을 시작한 후 보홀섬과 마닐라 남쪽의 민도르섬은 물론 루손까지 필리핀 전역을 돌아다녔다. 1572년 마닐라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정복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인물이다. 마닐라의 유명한 관광지인 성벽 인트라무로스도 레가스피가 활동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유물이다. 레가스피 유해는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성 어거스틴 대성당’에 안치돼 있다.

길의 풍경이 몇 번씩 바뀔 때쯤 멀리 삼각형 모양의 산이 보였다. 레가스피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마욘화산이다. 마욘은 ‘아름다움’을 뜻하는 이 지방 토속어(비콜어) ‘마가욘(magayon)’에서 따왔다.

활화산인 마욘화산은 1815년 대폭발을 일으킨 이후 15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1993년에는 2개월 동안이나 폭발이 지속되며 77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2006년에는 화산 폭발과 함께 태풍이 불어닥치며 산사태로 1000여명이 죽고 인근 카그사와가 완전히 파괴됐다. 이후 크고 작은 폭발이 있었지만 참사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다라가성당·카그사와 종탑…가슴 아린 식민지 유물

산후안바티스타교회
산후안바티스타교회
레가스피 시내 어디에서도 마욘화산을 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화산의 모습이 가장 도드라지게 보이는 곳이 카그사와 유적지 인근이다. 1814년 마욘화산이 폭발했을 당시, 이곳에 있던 교회는 용암에 무너지고 가장 높이 솟아 있던 종탑만 남았다. 그 종탑이 카그사와 유적지이다. 카그사와 종탑과 성벽은 마욘화산의 매끄러운 능선 초록 평원의 풍광과 마주하고 있다. 유적지는 불모의 땅에 솟아 있는 추모탑처럼 애잔하고 한편으로 성벽의 절묘한 곡선이 화산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마욘화산과 레가스피 시내 전경을 한번에 보고 싶다면 리그논 힐에 올라가면 된다. 레가스피 시내는 물론 레가스피공항에서 비행기가 떠가는 모습까지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마욘화산 밑에 산 후안 바티스타 교회는 꼭 들러보아야 할 필수 유적지다. 19세기 식민지풍 건축양식의 바티스타 교회는 필리핀에서 찾아보기 힘든 석공들의 개인적인 표시가 새겨져 있다.

레가스피의 또다른 유적지 중 하나인 다라가 성당은 유럽의 화려한 성당과는 다르지만 오래된 시간을 견딘 만큼 소박하고도 고즈넉한 멋이 있다. 다라가 성당은 1777년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지은 성당이다. 성당 곳곳에는 성모마리아의 성상(聖像)이 세워져 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호세라는 수도사가 홍수와 재난 속에서 성모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것을 계기로 지은 성당이라고 한다.

코발트색 바다에 펼쳐진 명품 리조트…‘쉼’그 이상의 힐링

레가스피의 바다는 명품이다. 눈부신 태양과 함께 코발트색 블루가 펼쳐지면 저절로 탄성이 인다. 이 아름다운 바다에 세워진 미시비스베이 리조트는 필리핀 3대 리조트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미시비스베이 리조트는 1㎞가 넘는 전용 해변과 3종류의 수영장을 갖추고 있으며 37개의 고급스런 빌라와 57개의 호텔식 룸이 있는 럭셔리한 공간이다.

무엇보다 유명 휴양지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레저프로그램이 거의 무료로 제공되는 점이 최고의 매력이다. 바나나보트나 카약 등은 숙박하는 손님이라면 아무 때라도 즐길 수 있다. ATV를 타고 리조트 주변을 흙먼지 날리며 달려가면 주변 마을에 이를 수 있다.

수상스포츠가 싫증이 나면 지프라인을 타거나 근처의 에코 파크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인공구조물이기는 하지만 에코 파크에서 볼 수 있는 공연장은 이채롭다.

황혼이 되면 레가스피의 바다는 또 다시 변신을 시작한다. 하늘을 온통 태워버릴듯 붉은 색 물감이 스멀거리며 돌아다닌다. 꼬리를 길게 감고 어둠이 몰려오고 천국보다 친근한 레가스피의 밤이 기분좋은 바람이 돼 찾아온다.

레가스피(필리핀)=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팁

[Travel] 필리핀 레가스피, 섬속의  섬…'순수'를 만나다
마닐라 공항의 공식 명칭은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이다. 국제선에서 레가스피까지 가는 국내선을 갈아타기가 쉽지 않다. 1층 도착층에서 셔틀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마닐라에서 레가스피까지는 약 50분, 공항에서 미시비스베이 리조트까지는 약 1시간 걸린다. 레가스피는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비코르반도 동쪽 기슭에 있는 항구도시다. 레가스피의 공용어는 이 지방 언어인 비콜어와 필리핀어인 타갈로그어. 레가스피에선 특히 필리핀 전통음식인 시니강을 잘 만든다. 새콤하면서도 얼큰해서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다. 레가스피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필리핀관광청 한국사무소(7107.co.kr) 참조. (02)598-2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