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피로 교수 "對北협상 때 '승부'에 집착 말고 이해한다는 걸 먼저 보여라"
한국 사회는 대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갈등에 직면해 있다. 북한과는 북핵 포기 문제를 놓고 지루한 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의 일방통보로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 재개를 놓고도 줄다리기 중이다. 일본과는 역사왜곡 문제로 한랭전선이 형성돼있다. 국내 정치권은 경제난 속에서 기업을 압박하는 경제민주화 법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방치해 놓을 수 없는 긴급한 현안들이다. 하나같이 고도의 협상전략이 필요한 사안들이다.

한국경제신문이 14일 ‘협상학의 대가’로 불리는 대니얼 샤피로 하버드대 교수에게 전화와 이메일로 여러 가지 진지한 의견을 구한 이유다. 샤피로 교수는 “상대를 이해하는 것과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협상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감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대를 적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찾기 위한 파트너로 인식하는 것이 협상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샤피로 교수는 최근 자신의 책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를 통해 이 같은 협상 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했다.

▷당신은 협상 상대와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남북 간 감정의 골은 너무 깊다.


대니얼 샤피로 교수가 로저 피셔와 함께 쓴 책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
대니얼 샤피로 교수가 로저 피셔와 함께 쓴 책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
“양측이 감정적으로 믿지 못하거나 싫어하면 협상은 이뤄질 수 없다. 감정적인 간극을 줄이기 위해 나는 인정(appreciation), 자율(autonomy), 협력(affiliation), 지위(status), 역할(role) 등 다섯 가지를 강조한다. 상대의 관점을 ‘인정’하는가, 상대에게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자율’을 주는가, 상대를 함께 결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협력자’로 보는가, 상대의 ‘지위’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가, 양측이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역할’을 하는가다. 내가 만약 한국 정부에 조언한다면 협상팀과는 별도로 작은 팀을 꾸려 제시한 5개 원칙에 기반해 북한과의 감정적 관계 개선을 별도로 연구하라고 제안할 것이다. 누가 누구와, 언제,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대화하는지 등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남북이 더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어질 협상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핵은 마지막 생존카드다. 어떻게 설득해 핵을 포기하게 해야 하나.

“협상의 목표를 ‘핵을 포기하게 한다’보다는 ‘양측이 공동으로 이익을 얻는 방법이 무엇인가’로 설정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김정은이 왜 핵과 권력승계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해한 것을 표현해 김정은이 스스로 공감하도록 느끼게 해야 한다. 이해한다는 게 그의 관점에 공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 정부에 스스로의 입장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이해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누구도 손해보지 않는다. 대신 당장 핵을 포기하게는 못해도 좀 더 창의적이고 양측의 이해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은 높아진다. 김정은과 직접 얘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북한에 자신의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언론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많은 언론들은 한국과 북한이 회담한 뒤 ‘누가 이겼냐, 누가 졌냐’에 대해 기사를 쓴다. 이는 편을 가르는 것이다. 대신 ‘이번 협상을 통해 양측이 어떤 아이디어에 공감했는가, 상대의 의견에 대해 어떤 것을 배웠는가’ 같은 것을 논해야 한다. 이런 내용들에 관심이 쏠리면 화합이 쉬워질 수 있다.”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면서 극단적인 우경화를 계속하고 있다.

“협상에선 상대가 취하고 있는 ‘자세’와 내면에 숨겨진 ‘관심’을 분리하는 게 중요하다. 아마 일본의 자세는 ‘위안부는 없었다’와 같은 식의 일방적인 부인이지만, 내면의 관심사는 ‘경제난에 지친 일본 국민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지지를 이끌어내겠다’일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관심이 뭔지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의 관심, 즉 근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면서도 한국의 요구에도 답할 수 있는 제안을 해야 한다. 분명히 일본의 근본 목적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빈부 간 갈등이 심하다.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같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이익은 모두의 이익이다. 모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처한 입장은 다르겠지만 각각이 모두가 공감하는 하나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건 부자들의 문제’, 부자들은 ‘이건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라는 식으로 말하며 편을 가르면 답이 안 나온다. 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모두가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삼성·애플 간 특허 분쟁 계속되는데.

“법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비용과 노력, 시간이 들어간다. 양측의 영업 상 비밀이나 권리를 존중하는 선에서 합의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것이든 무차별적 소송보다는 비용이 적게 들 것이다.”

▷직장 내에서도 상사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어렵게 직장을 구하고도 몇 달도 안돼 그만두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내 친구가 상사가 자신에 대해 내린 평가를 놓고 불평하는 것을 들어준 적이 있다. 나는 친구에게 그 상사와 대화할 때 칭찬을 먼저 하라고 조언했다. 친구는 자신의 상사는 칭찬할 거리라곤 전혀 없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상사의 장점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그 결과 그 상사가 여러 사람을 관리하느라 매우 바쁘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내 친구는 다음에 상사와 대화할 때 ‘수많은 사람을 관리하는 당신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는 다른 어느때보다 순조로웠고 친구는 결과적으로 승진까지 할 수 있었다.”

▷당신이 경험한 협상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1998년 에콰도르와 페루 간의 영토 분쟁 문제다. 두 나라의 국경 갈등은 1830년대부터 계속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뿌리깊은 것이었다. 당시 에콰도르 대통령인 하밀 마우아드가 내가 속해있는 하버드대 국제협상프로그램에 자문을 의뢰했었다. 우리는 마우아드에게 당시 페루 대통령인 알베르토 후지모리와 협상할 때 절대 정치적 이해관계를 먼저 앞세우지 말라고 했다. 대신 ‘후지모리 대통령의 오랜 경륜에 힘입어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며 협상을 시작하라고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두 국가는 ‘영토 획득’이라는 각각의 문제가 아닌 ‘평화 유지’라는 공동의 문제를 놓고 해결책을 찾는 협력자가 될 수 있었다. 결국 1999년 협상이 체결됐고 두 국가는 지금까지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난 속에 삶의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조언한다면.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협상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도 많다. 내 조언은 긍정적 자세를 가지고 현재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하버드대 식당에서 만난 두 여종업원의 얘기다. 우연히도 그 둘은 모두 작가를 꿈꾸고 있었다. 한 명은 너무 작가가 되고 싶은 나머지 종업원 일을 싫어했다. 그는 퇴근 뒤에라도 글을 쓰려고 했지만 낮 동안의 불만족스러운 생활은 그를 너무 피곤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냥 잠들 수밖에 없었다. 반면 다른 한 명은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손님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사람들의 행동이야말로 글을 위한 가장 좋은 소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삶에 충실한 건, 내가 원하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준비일 수 있다.”

▷당신의 여러 조언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고 형편없는 사람들과 협상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최근 하버드대 강의에 7살난 아들인 노아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노아에게 상대와 갈등을 빚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노아는 ‘코로 숨을 들이마쉬고 천천히 내쉰 뒤, 미안하다고 말해요’라고 답했다. 정말 현명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샤피로 교수 "對北협상 때 '승부'에 집착 말고 이해한다는 걸 먼저 보여라"
샤피로 교수는
…대니얼 샤피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및 의과대 정신건강학부 교수는 존스홉킨스대에서 심리학 학사를, 매사추세츠주립대 엠허스트캠퍼스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터프츠대 플리처스쿨과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2008년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세계의 젊은 리더’에 꼽히기도 했다. 현재 하버드국제협상프로그램(HINP) 책임자를 맡고 있으며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정부 관료, 협상 전문가, 법률가, 심리학자 등을 대상으로 협상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소로스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갈등조정프로그램은 30여개국에서 100만명 이상이 수강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