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해고 근로자와 금속노조 경주지부 간부 300여명이 지난 11일 부당 해고자 복직과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회사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제공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해고 근로자와 금속노조 경주지부 간부 300여명이 지난 11일 부당 해고자 복직과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회사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제공
경주지역 자동차부품 업체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발레오전장)가 다시 청산 위기에 내몰렸다. 지분 100% 대주주인 프랑스 발레오그룹이 오는 9월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 발레오전장 청산 안건 상정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발레오그룹은 발레오전장 해고 노동자들이 회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주지부 간부 등과 함께 지난 9일부터 회사를 점거·농성하는 것을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보고 철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발레오그룹이 임시 주총에서 청산을 의결하면 지난해 5314억원 매출에 423억원의 순이익을 거둔 이 회사의 직원 780여명은 물론 협력업체 직원 1200여명 등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강기봉 발레오전장 대표는 15일 “발레오그룹이 ‘한국 (해고 근로자 점거) 상황이 심각하다는 지적과 함께 9월 임시 주총에서 발레오전장 청산 건을 상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왔다”며 “그룹이 청산을 결정하면 회사는 공중 분해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그룹 측이 근로자 해고를 둘러싼 분쟁이 불거지면서 2009년 11월 청산을 결정했지만 이후 실적이 좋아지면서 지금까지 회사가 유지되고 있다”며 “현대자동차가 진출해 있는 중국 상하이, 인도, 태국에서도 부품 제작이 얼마든지 가능한 만큼 청산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한국 철수를 쉽게 결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상 발레오전장을 계속 끌고가기가 어렵다는 그룹 내 분위기가 문제”라며 “공권력이 (점거 농성자 해산 등에) 원칙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2009년과 같은 결정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3년전 111일 최악 파업에 민노총 탈퇴했는데…그때 그 세력이 발레오전장 존폐 ‘위협’

해고 근로자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주지부 간부 등 150여명은 △해고 근로자 28명 복직 △자유로운 노조사무실 출입과 노조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지난 9일부터 발레오전장 부품생산공장 2층 사무실을 점거한 채 농성하고 있다. 이들은 “법원이 노조 활동을 보장하라고 판결했는데 회사 측은 노조 사무실 출입시간을 제한하는 등 노조활동을 방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방위산업체여서 출입 절차를 준수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농성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고성능 확성기 소음 탓에 사무실에서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전했다.

발레오전장은 2010년 2월 인력 구조조정을 놓고 111일간 파업과 직장 폐쇄라는 갈등을 겪었다. 노조 측은 그해 6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95%의 찬성률로 민주노총에서 탈퇴했고, 회사 측은 이후 28명을 해고했다. 해고 근로자들은 부당 해고라며 소송을 냈고, 지난 5월30일 서울고법은 “회사 측의 근로자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회사 측은 이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해고 근로자와 금속노조 경주지부 간부 등은 서울고법 판결을 근거로 지난 9일 발레오전장에 진입, 농성을 시작했다.

경주지역 관련 업계는 발레오전장이 발레오공조코리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충남 천안에 있던 자동차 공기압축기 생산업체 발레오공조의 대주주(지분율 100%)였던 발레오그룹은 이 회사의 노사 분규가 심화되자 2009년 9월 청산을 결정하고 철수, 직원 17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경주시 관계자는 “발레오전장이 청산되면 일자리 2000여개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 경주 지역경제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레오전장 어떤 회사

살아나던 발레오전장 '청산 위기'
1986년 만도기계 경주공장으로 출범해 1999년 7월 발레오에 넘어갔다. 주요 생산품은 자동차의 스타터 모터와 전류를 공급하는 교류발전기 등 전기 관련 부품(전장)으로 현대·기아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등에 납품하고 있다.

발레오그룹은 인수 이후 외국인 대표이사를 두다가 2009년 자동차 엔진부품 업체인 인지컨트롤스를 경영했던 강기봉 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장기파업 이후 회사에 복귀한 조합원들은 2010년 5월 임시 총회를 열고 금속노조 만도지회를 탈퇴해 기업별 노조인 ‘발레오전장노동조합’을 세웠다. 현재 직원의 90%가 노조 소속이다.

노사 분규로 2009년 3000여억원 매출에 35억여원의 적자를 봤던 이 회사는 2010년 매출 4150억원에 180억원 순이익으로 흑자 전환했다.

2011년에는 매출 4931억원에 순이익 369억원, 지난해엔 5314억원어치를 팔아 423억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2011년 5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 중 유성기업 파업을 언급하면서 발레오전장을 노사화합으로 일궈낸 모범 기업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경주=김덕용/하인식 기자 kim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