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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구청 공무원이 실내온도 26도 준수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학교의 여러 사무실을 다녀갔다. 요즈음 정부에서 오후 2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에어컨 가동중지 시간을 정하고 실내온도를 집중단속하고 있다. 여름철 전기 사용 증가에 따른 전력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다.

전력부족 문제는 전기의 공급량보다 소비량이 많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해결책은 전기 소비는 줄이고 공급은 늘리는 일이다. 전기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발전소를 더 많이 건설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친환경 사회를 주장하는 환경단체와 내가 사는 지역에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 때문이었다.

이런 여건에서 전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기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전기 소비를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전기 요금을 인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전기 요금을 올리지 못했다. 정부의 물가관리 정책과 전기 요금을 올리면 서민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논리였다. 그러다 보니 전기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잘못 책정된 가격은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 과거 옛 소련에서 정부에 의해 책정된 빵 가격이 너무 낮았다. 그러자 농부들이 가축에게 빵을 먹이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가축은 곡물을 날로 먹을 수 있는 동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책정한 빵 가격이 곡물 가격보다 싸니 곡물이 아닌 빵을 먹인 것이다. 빵은 밀가루를 재료로 하여 거기에 연료와 노동을 더해 만들어진다. 가축에게 빵을 먹인다는 것은 곡물을 그냥 먹이면 될 것을 불필요하게 거기에다 연료비와 노동비용을 추가하는 꼴이 된다. 엄청난 자원 낭비다.

지금 우리 전기 요금이 옛 소련의 빵 가격 책정과 닮았다. 그러다 보니 옛 소련에서 가축에게 곡물 대신 빵을 먹이는 것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냉난방에 가스나 유류를 사용하는 대신 대부분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전기 생산에는 가스나 유류가 사용된다. 가스와 유류 가격이 올라도 전기 가격이 낮으니 너도 나도 가스와 유류 냉난방을 전기 냉난방으로 바꿨다. 가스 및 유류 난로와 보일러를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이 전기난로나 바닥에 전선을 깔아 난방을 한다. 또 에어컨을 켠 채 문을 활짝 열고 영업하는 가게들이 널려 있다.

감사원이 공개한 ‘공기업 재무 및 사업구조 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8~2011년 산업용 전기 요금이 총괄원가의 평균 85.8%에 불과하고, 원가에 못 미치는 금액이 약 5조원이나 됐다. 심야전력도 2008~2011년 총괄원가의 63~66% 수준에 공급됐다.

재화 부족은 가격과 관련돼 있다. 정부에 의해 가격이 균형가격보다 낮게 책정되면 초과수요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재화 부족 현상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전기부족 현상은 정부가 전기 요금을 낮게 책정해 생긴 초과수요 현상이다. 따라서 전기 요금을 인상해야 전력의 초과수요, 즉 전력 부족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

전기 요금을 올리면 사람들은 공무원이 나서서 점검하거나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낭비를 줄이고 절약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올여름 예상되는 전력 대란도 막을 수 있고 매년 여름과 겨울마다 반복되는 전력부족 문제도 해결된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에 따라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환경단체와 주민들을 설득해 발전소를 더 건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물가는 잡는다고 해서 잡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가 잡겠다고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그리고 전기 요금 인상에 따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책은 ‘전기 바우처’를 사용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문제는 복지제도로 다뤄야지, 가격을 통제하면 인류역사에서 경험한 임대료 통제, 식품가격 통제 등의 사례처럼 문제만 악화시킨다. 무더운 여름 이리저리 실내온도를 점검하고 다니는 공무원들이 안쓰럽다.

안재욱 < 경희대 서울부총장·경제학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