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방송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했는데 이번 ‘탐라는 영화’ 기획에 참여하고 난 다음 영화로 마음을 굳혔습니다.”(제주 영주고 디지털영상과 3학년 강승필 군·촬영감독)

“20명이 각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한 작품이 완성되는 걸 보면서 팀워크의 재미와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3학년 이원재 군·남주인공)

강군과 이군 등 영주고 학생 20명은 지난 11~15일 제주시 삼양동 주택가와 검은모래 해변 등지에서 13분짜리 단편영화 ‘빨래’를 촬영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의 이명세 감독과 ‘효자동 이발사’의 임찬상 감독이 멘토로 참여했다.

영주고 학생들과 정상급 감독들의 만남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 ‘특별한 하루’를 통해 이뤄졌다. 특별한 하루는 음악·미술·연극·영화 등 각 분야 문화예술인들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번 특별한 하루의 부제는 ‘탐라는 제주’. 제주도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곳이지만 제주도 청소년에 대한 영화 교육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주 소재 고교를 선정했다. 강승필 군은 “영화가 하고 싶어도 내 수준이 어떤지, 가능성은 있는지 알 수 없어서 계속 망설였다”며 “이 감독님이 재능이 있다고 해주셔서 큰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영화 빨래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여주인공 수정(고3)은 몇달간 돈을 모아 꼭 사고 싶었던 옷을 산다. 새옷이라 사자마자 빨래를 해서 집 옥상에 널었는데 다음날 보니 옷이 없어졌다. 수정은 옆집에 새로 이사온 남주인공 준우(고3)를 의심해 몇 번이고 다그친다. 준우는 수정에게 반했지만 수정의 오해 때문에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알고 보니 옷은 강한 제주도 바람에 날아가 가로수에 걸려 있다. 수정은 준우에게 창피를 무릅쓰고 옷을 내려달라고 부탁한다. 그 과정에서 수정도 준우에게 호감을 느낀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이미현 양(1학년·디지털영상과)이 썼다. 이명세 감독은 “다른 학생들이 쓴 시나리오보다 단편에 잘 맞고 고교생의 풋풋함도 드러나는데다 무엇보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바람을 소재로 쓴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양은 시나리오가 선정된 덕에 2·3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감독으로 선발됐다.

촬영 첫 날에는 2·3학년 선배들이 이 양을 ‘감독’이라고 짧게 부르면서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그러나 영화 제작이 진행될수록 학생들의 태도가 진지해지며 이 양의 지시가 점점 잘 먹혀들어갔다. 이 감독은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학생들이 스스로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영화나 연극을 실제로 만들어 보는 교육은 단순한 예술 교육이 아니라 인성 교육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감독이나 주연이 아닌 학생들도 ‘이런 기회는 다신 없을 것 같다’며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음향을 담당한 김수완 군(1학년·일반과)은 “촬영할 땐 동시녹음 마이크 들고 땀을 뻘뻘 흘렸지만 영화가 완성된 것을 보면서 ‘나도 없어선 안되는 역할을 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제주=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