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근로자주택전세자금 8000만원을 대출받은 A씨는 2개월 뒤 아파트를 매입했다. 이어 다음달엔 A씨의 부인이 또 다른 아파트 한 채를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전세자금을 갚으라는 은행의 요구는 없었다.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운영 중인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대출 제도가 당국과 은행의 관리 부실로 주택 구입에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7일 감사원이 발표한 ‘공적 서민주택금융 지원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은행 등 5개 은행에서 취급한 근로자·서민·저소득가구 전세자금 대출자 13만1601명 중 110명(총 40억여원)이 대출을 받은 뒤 곧바로 주택을 구입했지만 국토교통부는 대출금 변제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감사원 감사 결과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계약자 30명은 자신은 임차인이고, 시공사 직원이 집주인인 것처럼 계약서를 허위로 작성, 근로자·서민 전세자금 7억6000만원을 대출받은 뒤 곧바로 아파트 소유권을 취득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지난 2월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 이자는 연 4.3%지만 전세자금대출은 연 3.7%에 불과해 전세자금을 사실상 주택 구입 자금으로 유용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서민 등의 주택 취득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등 사후관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국토부 장관에게 통보했다.

감사원은 또 저소득가구 전세자금대출 지원 한도가 최근 전세가격 상승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상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역별 전세보증금 한도는 수도권은 2011년(1억원), 지방은 2007년(4000만원) 마지막으로 인상된 뒤 변동이 없다.

김보형/도병욱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