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어제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상법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집행임원제도 의무화, 감사위원과 이사의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전자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 소송제 도입 등이 그 골자다. 지난달 열린 공청회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규정과 제도들로 가득찬 개정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음에도 전혀 달라진 게 없다. 한국경제신문이 긴급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그대로 발효될 경우 주식회사의 근간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당장 집행임원제도 의무화부터가 그렇다. 이런 제도를 기업에 강제하는 나라가 없다. 설령 그런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그 선택은 기업에 맡겨야 옳다. 이사회 중심인 도요타는 성공하고 집행임원제를 도입한 소니가 실패한 데서도 알 수 있지만 기업지배구조는 정부가 함부로 강요할 일이 아니다. 또한 감사위원과 이사를 분리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도 전 세계에서 유일할 정도로 명백한 주주권 침해에 해당한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위험한 발상이다. 집중투표제는 일본에서 도입했다가 주주 간 파벌 싸움, 경영 혼란 등으로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정났다. 벌써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속으로 미소짓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가뜩이나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터에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간섭하는 등 활개칠 길만 열어준다는 지적이다. 전자투표제가 의무화될 경우도 기업의 원활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여론몰이와 세력결집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모기업 주주들이 자회사 임원진을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다는 다중대표 소송제 도입도 자회사의 주주를 무시하고 그 법인격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른 나라들은 황금주다, 차등의결권이다 해서 대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대주주는 차별하고, 소액주주는 유리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할지를 고민해 나온 게 지금의 상법 개정안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경영을 정치판으로 만들 가능성, 다시 말해 위험한 불장난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