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위도상 정동쪽이 정동진이라면 경도상 정남쪽에 있는 지역이 바로 정남진 장흥이다. 봄이면 바닷가 들녘을 가득 메우는 보리싹과 여름에 더욱 무성해지는 종려나무 가로수가 남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기는 물의 고장이다. 전남 장흥은 도시가 온통 물로 가득 차 있다. 바로 앞 바다야 두말할 나위가 없고 시내 중심부를 흐르는 탐진강에는 피라미와 은어가 줄지어 헤엄을 친다. 물처럼 사람들도 순후하다. 장흥의 굽은 길과 파노라마처럼 떠 있는 섬들 그리고 불덩이처럼 올라오는 일출은 가슴 시린 감동을 준다. 모든 시름을 잊고 장흥의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가지산 자락의 천년고찰 보림사.
가지산 자락의 천년고찰 보림사.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닮아버린 곳

장흥은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다. 해변가 쪽이다 보니 높은 산은 없어도 아기자기한 산세를 자랑하는 가지산이 장흥을 우아하게 감싼다. 높이라고 해야 해발 510m에 불과하지만 이 산에는 보물을 한 아름 간직한 보림사가 있다. 가지산은 한국에만 있는 산이 아니다. 멀리 인도와 중국에도 가지산이 있고 보림사를 품에 안고 있다. 이 세 절을 ‘동양의 3보림’이라고 부른다.

사찰 경내에는 국보로 지정된 석탑과 석등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로 지정된 창성탑, 창성탑비 등이 있다. 웅숭깊은 절의 느낌도 좋지만 보림사 뒤편으로 난 비자림 숲길은 그야말로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다. 400년생 비자나무 600여 그루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산림욕장이다.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어울림상’을 받았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장흥에는 또 다른 숲길이 있다. 억불산에 있는 편백숲 우드랜드(jhwoodland.co.kr)가 그것.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많이 내뿜는 것으로 알려진 편백나무가 무성하다. 깊은 그림자와 태양이 남겨놓은 아스라한 빛이 산란하며 나무 사이로 떨어진다.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 숲길로 청신한 바람이 불어온다. 우드랜드에는 통나무주택 황토주택 한옥 등 숲 속에서 건강 체험을 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생태건축을 체험할 수 있는 목재문화체험관 목공건축체험장 등이 있다. 편백노천탕, 편백톱밥 산책로 등도 갖춰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영화·드라마 촬영지였던 소등섬의 풍경.
영화·드라마 촬영지였던 소등섬의 풍경.

◆영화와 문학의 소재로 쓰인 풍성한 서정

장흥의 정수를 담은 곳은 아무래도 남포마을이다. 영화 ‘축제’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소등섬이 마치 등불처럼 떠 있는 남포바다는 동틀 무렵이 압권이다. 붉은 해가 떠오르기 전에 세상은 온통 황금빛이 된다.

장흥이라는 이 작은 군청 소재지는 무수한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특히 남포마을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소등섬은 남포마을 바로 앞에 떠 있는 작은 무인도다. 물때에 따라 산책을 하듯 섬에 들어갈 수 있다. 장흥은 또한 소설가 한승원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금도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에 ‘해산토굴’이라는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인 ‘포구의 달’이나 ‘해산가는 길’은 장흥을 배경으로 해 쓰인 것들이다. 그는 토속적인 인간의 삶과 원초적인 생명력 그리고 한의 공간으로서의 자연을 그려냈다.

그의 집필실에서 바라보는 수문(水門) 여닫이 바다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앞엔 바다, 뒤에는 산을 둔 언덕에 토굴을 지어 살고 싶었다”는 작가의 소망이 실현된 집앞 해변 산책로는 찾는 이들에게 소설가 한승원과 그를 소설가로 키운 남해바다의 감성적 풍경을 펼쳐놓는다.

유치 자연휴양림의 출렁다리.
유치 자연휴양림의 출렁다리.

◆맛과 멋 그리고 인간의 냄새가 흐르는 곳

관자와 표고버섯, 한우가 조화를 이룬 ‘장흥삼합’.
관자와 표고버섯, 한우가 조화를 이룬 ‘장흥삼합’.
장흥은 산과 들 바다가 주는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여름에는 보양 음식으로 명성이 높은 장어(하모) 샤부샤부와 장흥군민보다 많은 사육 두수를 자랑하는 ‘한우’, 청정해역 득량만에서 채취한 ‘키조개’, 슬로시티에서 키운 ‘표고버섯’을 함께 구워 먹는 ‘장흥삼합’을 별미 중의 별미로 꼽는다. 한우는 구워 먹고, 키조개와 표고는 데쳐 먹는다. 세 가지를 함께 집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더해져 입에 착착 감긴다. 겨울철에는 전국 생산량의 50%를 차지하는 매생이가 겨울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고 일출 포인트인 남포마을의 ‘석화구이’의 맛은 일품이다.

장흥에 오면 ‘정남진 토요시장’에 꼭 한번 들러봐야 한다. 전국 최초의 주말시장인 토요시장에서는 낙지 바지락 주꾸미 전어 등의 싱싱한 해산물도 일품이지만 잊고 지냈던 고향의 훈훈한 정을 듬뿍 맛볼 수 있는 것이 묘미다. 어느덧 긴 어둠이 바다 끝 포말을 따라 몰려왔다. 바다는 못내 아쉬운 듯 긴 한숨을 토해내고 긴 그물처럼 낙조가 걸린다. 아침이면 다시 잉태할 등 푸른 바다를 꿈꾸며 장흥의 밤은 깊어만 갔다.

장흥=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팁

[Travel] 장엄하고 흥미롭다
장흥삼합은 ‘만나숯불갈비’(061-864-1818), ‘탐마루’(061-862-8292)가 유명하다. 된장물회도 맛보지 않으면 후회할 만한 진미다. 어린 농어나 돔의 속살을 약간 시큼하게 익은 열무김치와 된장, 매실과 막걸리를 숙성시킨 식초 등과 버무려 내놓는다. ‘싱싱회 마을’(061-863-8555), ‘해돋이’(061-862-7234)를 추천하는 사람이 많다. 유치면에 있는 유치자연휴양림(061-863-6350)은 숲이 우거지고 근처 풍광이 뛰어나다. 계곡을 따라 산책로가 있어 가족여행이나 단체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장흥군이 주최하고 정남진물축제추진위원회(jhwater.kr)가 주관하는 2013 대한민국 정남진 물축제는 오는 26일~ 8월1일까지 7일간 ‘물과 숲 그리고 휴(休)’라는 주제로 장흥읍 탐진강과 편백숲 우드랜드 일원에서 펼쳐진다.

올해로 6회째인 정남진 물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으로는 7개의 각기 다른 천연 성분으로 채운 ‘천연무지개풀장’, 물총과 물풍선을 이용한 물 난장인 ‘지상최대 물싸움’, 튜브를 타고 날아가는 ‘물 로켓’ ‘맨손물고기잡기’를 들 수 있다.

장어 메기 잉어 붕어 등의 민물고기를 잡는 맨손물고기잡기는 탐진강 특설어장에서 매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다. (061)860-0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