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탈리아 집값 '날개없는 추락'
2008년 이후 세계 경제를 흔든 경제위기는 모두 집값이 출발점이었다. 미국은 2008년 집값이 폭락하고 덩달아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연계 파생상품 가격이 급락하면서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유럽에서도 스페인 등에서 형성된 부동산 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부실 대출로 은행이 어려워지고, 이를 지원한 국가 재정까지 악화하면서 2010년 재정위기가 시작됐다.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집값 동향은 경기를 읽는 핵심 요소로 분류된다.

두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선 월별 주택 판매가 약 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반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집값은 7년 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집값 상승 계속

미국 주택시장은 견고한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부동산협회(NAR)는 22일(현지시간) 6월 기존 주택판매가 508만가구(연율 기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월 대비 1.2% 하락한 수치지만, 전년 동기 대비로는 15.2% 증가했다. 2009년 11월 이후 월별 판매 기준으로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미국 최고의 주택 시장 애널리스트로 꼽히는 아이비 젤만은 “올 1분기 미국 전체 가구 수 대비 주택 판매 건수 비율은 27년래 최저 수준인 1.5%”라며 “이 비율이 2% 아래일 때는 항상 주택 가격이 올랐다”고 분석했다.

최근 모기지 금리가 급등한 것이 미국 부동산 경기를 꺾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30년 만기 모기지금리는 지난 5월 초 연 3.59%에서 7월 중순 연 4.68%까지 올랐다.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요인들이 주택경기 회복세를 중단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로렌스 윤 NAR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월부터 모기지 금리가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주택시장은 여전히 견고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로존 “7년 내 최저”

유로존의 상황은 심각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집계한 지난 1분기 유로존의 신규·기존 주택 가격 지수는 2009년 1분기를 100으로 했을 때 96.33을 기록했다. 2006년 2분기 이후 최저치다.

집값이 내려간다는 건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전체 가계의 80% 이상이 집을 가진 스페인의 상황은 심각하다. 주택가격 지수가 2009년보다 30% 떨어졌다. 실업률이 25%가 넘는 상황에서 주택에 묶인 가계의 자산가치까지 폭락하는 상황이다. 이탈리아도 경제위기의 한복판에 있던 4년 전보다도 8% 하락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새빌스는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아일랜드의 집값은 집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최저치까지 하락했다.

‘경제 우등생’ 독일의 상황은 딴판이다. 집값은 지난 10년 내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그간 돈을 쌓아놓은 독일 투자자들이 고수익을 찾아 부동산 시장으로 몰린 덕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 내 국가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윤선 기자/워싱턴=장진모 특파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