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停戰 60주년, 거짓 묵념은 가라
1953년 7월27일은 600여만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날이다. 정부와 여러 단체들이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이 전쟁에 참전해 4만여명의 희생자를 낸 미국에서도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왠지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북한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전승절)’을 경축한답시고 반한(反韓)·반미(反美)의 선전판을 벌이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라 치더라도, 우리 주변에 참전용사들을 슬프게 만드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만큼 참전용사들을 홀대했던 나라도 드물다. 우리는 정전 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북녘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의 안부조차 묻지 않고 지냈다. 한국군 사상자만 100여만명을 기록했지만, 국립묘지에 모셔진 호국영령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답답한 것은 북한이 ‘핵찜질’과 ‘서울 불바다’를 위협하는 중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富)를 좇아 일희일비하는 졸부들의 머니게임 속에서, 장병들이 목숨 바쳐 지켜온 북방한계선(NLL)을 놓고 엉뚱한 언쟁이나 벌이는 정치인들의 이전투구 속에서, 부정한 돈으로 미술품을 사재고 해외 조세피난처에 돈을 빼돌리는 일부 상류층들의 축재놀음 속에서, 태극기와 애국가를 외면하면서도 제도권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종북세력의 뻔뻔스러움 속에서 6·25전쟁은 그렇게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그 와중에도 브루스 커밍스의 ‘얼치기 제자들’은 6·25전쟁의 의미를 왜곡·훼손하는 데 거침이 없다. 북한군이 침공을 개시해 사흘 만에 서울을 함락한 전쟁을 두고 ‘북침’이라고 우기는 ‘이상한 선생님들’도 있고,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리면서 자유를 수호한 전쟁을 ‘미 제국주의에 대항한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하는 비뚤어진 역사가들도 있으며, 이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철부지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대책 없이 평화협정만을 재촉하는 ‘철부지 학자들’도 눈에 띈다.

이게 될 말인가. 다부동과 지평리에서, 압록강과 백마고지에서, 그리고 이름 모를 들녘에서 숨져간 숱한 무명용사들이 원혼이 돼 떠도는 이곳 이 땅에서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렇다. 이제부터라도 정전기념 행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전쟁으로서, 6·25전쟁의 의미를 회상하는 것이 돼야 한다. 포연 속에 사라져간 영웅들을 기리고 ‘망전필위(妄戰必危)’의 호국진리를 되새기는 계기가 돼야 한다. 함께 피흘려 준 우방국들에도 감사해야 한다. 평화협정 문제에 대해서도 바로 아는 계기가 돼야 한다.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정전(停戰)을 종전(終戰)으로 바꿔야 한다는 원론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지금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불변의 ‘통일전선전략’ 하에서 끊임없이 대남심리전을 펼치고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은 당면한 최대의 장애물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북한은 뻔한 의도를 가지고 ‘조·미 평화협정’을 주장하는데, 주변에는 이런 주장에 장단이나 맞추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평화협정이란 당연히 가야 할 길이지만, 무턱대고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변화와 함께 상생을 담보할 여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그럼에도 정전 60주년을 뜻깊게 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와 국민이 호국영령들에게 들이는 정성일 것이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국군포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전사자 유골 발굴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지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생존한 국군포로를 모셔오는 일과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 영령들을 거두는 일에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한다. 6·25전쟁의 참의미가 국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면 기념행사가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격전지에 피어난 목련꽃, 라일락꽃이 제아무리 영롱한들 후세의 정성만 하겠는가. 거창하기만 한 기념행사나 개념 없는 정치인들의 거짓 묵념으로는 그 어떤 생자나 망자도 위로받지 못하는 법이다.

김태우 < 객원논설위원, 동국대 석좌교수 defensektw@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