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대통령 비서실장과 집권여당 대표를 지낸 거물 정치인, 전두환 정권 당시 금기어였던 ‘광주사태’(5·18광주민주화운동)를 국회에서 처음 거론한 민주화 투사,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의 일등공신….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많지만, 주변 사람들은 ‘애처가’라는 단어가 그의 이름 앞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입을 모은다.

애처가 소문은 한 위원장이 지난 12일 인터뷰 약속 장소에 등장하는 순간 사실로 입증됐다. 부인 정영자 여사의 손을 꼭 붙잡고 나타난 것이다. 덕분에 한국경제신문이 ‘한경과 맛있는 만남’ 코너를 시작한 지 약 2년 만에 처음으로 부부가 함께 참여한 인터뷰가 이뤄졌다. 한 위원장의 30년 단골집인 ‘서울삼족탕’에서 인터뷰를 하는 내내 부부는 나란히 앉아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이어갔다.

○24시간 부인 곁을 지킨 정치인

[한경과 맛있는 만남]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우린 영호남 커플…벽 깨고 화합해야 통일 쉬워져"
인터뷰는 부부의 첫 만남에 대한 회고로 시작됐다. 부부는 번갈아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한 위원장이 “학생운동 하면서 만나게 됐는데 종로에 있던 왕실다방에서 주로 데이트했다”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자, 정 여사는 결혼한 이후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정릉에 살 때 도둑을 맞은 적이 있어요. 낮에 외출했다가 돌아왔는데 경찰들이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먼저 와 있던 남편은 어깨를 툭 치면서 ‘도둑 들었어, 너무 놀라지 마’라고만 했습니다. 왜 집을 비웠는지, 무엇이 없어졌는지 묻지도 않았어요. 너무 고맙더라고요.” 부인의 칭찬에 한 위원장은 미소를 지으며 “이미 도둑맞은 상태에서 아내가 충격받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싶어서 그랬다”고 화답했다.

인터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주문한 삼족찜이 나왔다. 삼족찜은 소의 다리(우족)를 인삼과 함께 오랜 시간 끓인 뒤 찜으로 만든 요리다. 한 위원장은 “요즘 술을 거의 안 하지만, 가끔 반주를 같이 하는 것도 좋다”며 소주를 한 잔 비웠다.

빈 잔을 채우면서 슬쩍 영호남 커플로서 장인의 결혼 승낙을 받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물었다. 한 위원장은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정 여사는 경남 진주 출신이다. 한 위원장이 “당시 호남 남편, 영남 부인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 잘 맞았다”고 운을 떼자, 정 여사가 “아버지가 처음에는 호남 출신에다 정치한다고 이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만나고 나서 ‘눈이 반짝반짝해서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밥은 굶기지 않겠네’라며 호평하는 바람에 큰 어려움 없이 결혼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대화는 한 위원장에게 ‘애처가’라는 별명이 붙여진 사연으로 이어졌다. “2010년 7월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폐암 3기에서 말기 사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정치를 하는 바람에 아내를 고생시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위원장은 이후 한동안 여의도를 떠났다. 정치권으로 돌아오라는 요청이 쇄도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하루종일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아내를 간호했다고 한다. 정 여사도 “완치되기 전까지 남편이 내 곁에서 5분 이상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다”며 “간호사들도 남편의 지극정성에 놀랐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서 멀어졌을 때 아쉽지 않았냐는 질문에 한 위원장은 “지금까지 정치를 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아내였다”며 “그런 아내가 잘못되면 내가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치는 국민을 향해 가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바른 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내게 바른 소리 해주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다”고 했다. 정 여사는 웃으면서 “남편이 야당 국회의원 할 때, 나는 남편에 대한 야당이었다”고 덧붙였다.

○DJ맨이 박근혜 대통령 지지하게 된 이유

삼족찜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할 때 삼족탕이 나왔다. 삼족탕은 삶은 우족을 사골 국물에 넣어 끓인 음식이다. 삼족찜과 마찬가지로 인삼이 들어간다. 한 위원장은 삼족탕 국물을 한 숟갈 맛본 뒤 “1981년 겨울부터 이 삼족탕을 먹기 시작했다”며 “가난하던 시절, 당시 주인 할머니가 공짜로 삼족탕을 먹으라고 주시곤 했다”고 말했다. 우연히 들른 이 식당에서 따뜻한 정을 느껴 30년 단골이 됐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식당이기에 더욱 자주 찾게 됐다고 한 위원장의 측근은 귀띔했다.

삼족탕에 대한 기억과 함께 이야기는 자연스레 1980년대 초로 넘어갔다. “40년 넘게 정치를 하면서 두 번의 큰 결단을 내렸는데, 첫 번째가 1982년 10월7일 국회 본회의 발언입니다. 날짜도 기억하고 있어요.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석방과 5·18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대통령직선제와 지방자치제 실시를 주장했습니다.”

이후 그의 삶은 가시밭길이 됐다고 한다. 한 위원장은 “다른 의원들이 ‘정치생활 마치려고 하느냐’고 비웃을 정도였다”며 “목숨을 걸고 발언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DJ(김대중)계로 분류됐고, 자연스럽게 민주화 투사의 길을 걸었다. 집 주변에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요원과 경찰들이 깔렸고, 한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 대상이 됐다. 결국 국가모독죄로 구속되기도 했다.

비어 있는 잔을 채우면서 두 번째 결단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을 지지한 것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평생을 DJ계로 살았던 그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에게 제의를 받고) 보름 동안 밤잠을 안 자고 고민했습니다. 민주당 대표까지 했는데, 어떻게 고민을 안 하겠습니까. 결정적으로 지금의 민주당은 과거의 민주당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대선 후보 중 박 대통령이 DJ도 해내지 못한 동서화합을 이룰 적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서는 “자신의 페이스를 찾은 것 같다”며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의 예를 들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강력한 뉴딜정책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었고, 존 F 케네디는 국민들에게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면서 진정성으로 다가가 지지를 받았다”며 “박 대통령은 케네디 스타일에 가까운데, 케네디처럼 점진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일·경제 발전을 위한 주춧돌, 국민통합

한 위원장은 지난해 박근혜 캠프에서 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지냈다. 당시 위원장은 박 대통령이었다.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가 꾸려졌을 때 박 대통령은 그에게 대통합위원장직을 맡겼다. 지난달 대통령 소속 대통합위원장에 다시 임명되면서, 그에게는 세 번 연속 국민 통합과 관련된 역할이 주어졌다.

한 위원장은 국민 통합의 의미에 대해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더니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나라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압축적으로 진행했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인구가 1억명을 넘지 않으면 내수시장 한계로 더 이상의 성장은 쉽지 않습니다. 인구 1억명은 통일에 의해서만 가능하죠. 통일의 전제조건은 국민 대통합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역과 계급, 세대 등으로 나눠진 상태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통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대통합위원장 임기(1년) 내 대통합을 이루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한 위원장은 “당연히 못한다”며 “소통문화라는 주춧돌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속도보다는 견고함에 집중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 대표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 박정희 시대 때의 일을 사과했고, 김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을 가리키며 ‘동서화합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화답했다”며 “그런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 통합은 출발이 좋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과거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재미있는 소학’이라는 책도 펴낸 적이 있다. 그는 “옛 이야기에는 배울 점들이 많아 요즘도 고서를 틈나는 대로 읽는다”며 연암 박지원이 쓴 ‘담연정기(澹然亭記)’에 나오는 이야기 한 편을 전했다. 도하라는 새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강바닥을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물고기를 다 놓치고, 청장이라는 새는 유유자적하면서도 한순간에 물고기를 낚아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한 위원장은 “여기에는 한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 권력이나 영화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우린 영호남 커플…벽 깨고 화합해야 통일 쉬워져"

한광옥 위원장의 단골집 ‘서울삼족탕’ 할머니의 ‘손맛’ … 더위 이기는 보양식 으뜸

[한경과 맛있는 만남]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우린 영호남 커플…벽 깨고 화합해야 통일 쉬워져"
서울 관악구에 있는 ‘서울삼족탕’은 우족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이 식당의 주메뉴는 관악구에서 맛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할머니삼족탕’ 메뉴와 같다. 할머니삼족탕을 운영했던 김희순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주방에서 일했던 염순오 씨가 김 할머니의 맛을 이어가기 위해 서울삼족탕을 차렸기 때문이다. 한광옥 위원장을 비롯해 할머니삼족탕 시절 단골들이 여전히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메뉴는 우족과 인삼으로 만든 삼족찜 및 삼족탕, 설렁탕이 전부다. 삼족찜은 1인분에 1만7000원, 삼족탕은 1인분에 1만2000원이다. 설렁탕은 6000원에 맛볼 수 있다.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과 사당역 사이에 있는데, 큰길 바로 옆에 있어 찾기가 쉽다. 식당 전화(02-874-4341)로 문의해도 된다.

정리=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