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자연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사실적인 소리들이 귓가를 두드린다. 여기에 빛과 바람까지 어우러지니 이 느낌을 감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영화 ‘벼랑 위의 포뇨’ 이후 5년 만에 발표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바람이 분다’. 지금껏 관객들을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를 현실로 가져왔다. 또 다시 새로움이다.







이 작품은 1920년대 가난, 병, 불경기, 대지진 등으로 살아가기 힘든 일본을 시대적 배경으로 실존 인물인 비행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호리코시 지로는 가미가제 폭격기로 알려진 전투기 제로센을 만든 인물. 어렸을 적 부터 비행기를 설계하고 싶어했던 호리코시 지로는 결국 그 꿈을 이루게 됐다. 하지만 호리코시 지로는 시대적 배경 앞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자신이 설계한 비행기가 전쟁에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된 호리코시 지로는 이후 깊은 자괴감에 빠지지만 결국 자신의 꿈인 비행기를 계속해서 만들어간다. “호리코시 지로라는 인물은 회사원이기 때문에 큰 발언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시대와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열심히 살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비참하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으니까요.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죄를 꼭 같이 업고 가야 될까요? 저희 아버지도 전쟁에 가담은 했지만 좋은 아버지였어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을 통해 태평양 전쟁, 관동 대지진, 제로센 등 논란거리를 건드리며 일본 국내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제로센이 추락하고 군국주의의 상징인 히노마루(일장기)가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에서, 한국에서는 호리코시 지로가 노력해 만든 결과물이 제로센으로 언급되는 것을 불편해한다. 미야지카 하야오는 이 점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마지막 신이 나오기 전, 약 10년 정도의 표현이 없어요. 굳이 그 시기를 그리고 싶지도 않았죠. 아마 따로 찾아보셔야 될 거에요. 이렇게 까지 히노마루를 많이 그려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전부 다 떨어지죠. 그것을 보고 여러 가지 말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추구하는 영상미는 ‘바람이 분다’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어린 호리코시 지로가 꿈 속 비행을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늘과 강, 푸른 초원과 마을의 모습이 하나로 담긴 장면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하늘은 비행기를 만나 더욱 힘을 얻었고 생생한 소리 역시 영화의 완성도에 힘을 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에게 인간의 소리에 대한 제안을 했다. 그리고 스즈키 토시오는 대찬성을 했다. 무엇이든 이렇게 척척 맞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미야자키 상이 ‘소리를 인간의 소리로 내면 어떨까?’ 제안을 했어요. 적극 찬성 했죠. 극단적으로 인간이 전부 소리를 내보면 어떨까? 둘이서 소리를 맡아볼까? 말하며 웃기도 했어요. 소리 전문가를 통해 비행기 지진 등 여러 가지 소리가 완성됐고 그렇게 사운드 디자인을 하게 됐죠. 훌륭한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이 더욱 인상 깊은 이유는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행기의 관계다. ‘바람이 분다’에 등장하는 이탈리아 비행기 제작자 지아니 카프로니 백작은 호리코시 지로가 동경한 인물이다. 신기한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비행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통해 알 수 있다. 지브리(Ghibli)는 사하라 사막을 통해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일컫는 말로 세계 2차 대전 당시 쓰인 이탈리아 정찰 비행기를 일컫는다. 바로 이 비행기를 지아니 카프로니 백작이 만들었다.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호리코시 지로처럼 지아니 카프로니 백작을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호리코시 지로의 모습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음이 살짝 겹쳐 보인다. 그래서일까? 유독 푸른 하늘과 강, 그리고 숲이 더욱 아름답다. “비행기가 날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다른 나라는 굉장히 풍요롭겠지’ 동경만 했을 거예요. 그리고 이 작품이 나오지도 못했겠죠? 하하.”(사진=대원미디어)







★재미로 보는 기자 생각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라 일컫는다. 이유를 묻는다면 ‘영화를 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판타지는 배제됐지만 ‘바람이 분다’는 또 한 번 미야자키 하야오 바람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50년 동안 애니메이터로 살아온 미야자키 하야오, 촉촉한 감성을 가진 그가 아직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행복을 넘어 축복이다. 일본의 역사 발언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소신 있는 발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이해를 넘어 신기하기까지 하다. 3D가 성행하는 시점, 2D에 대한 확고한 마음도 이렇게 고마울 수가. 지브리 박물관에서 데려온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와 ‘모노노케 히메’의 야크르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min@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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